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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1.06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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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명-사진-기사 속.jpg청춘의 7080세대 여행 수단은 열차였다. 청평·강촌은 경춘선, 일영·장흥은 교외선, 소요산과 한탄강은 경원선 열차를 타고 갔다. 중학시절 여름 한탄강 임시역사에 내려 교회수련회에 참가했던 기억이 아련하다. 계단 손잡이 양손에 잡고 상체 밖으로 젖히면, 싸한 긴장감 속에 완만히 휘도는 열차의 곡선이 아름다웠다. 경원선은 경기북부와 철원 군부대 장병을 날랐다. 의정부역을 지나면 열차 안에 국방색이 짙어진다. 두고 온 애인 생각에 불안한 눈길을 차창에 둔 일등병, 모자로 얼굴을 가려 자는지 앞날의 시름인지 모를 병장, 휴가 무용담 왁자지껄 상병들.. 초록 군복만 남는다. 창밖에 커스텀테일러, 이런저런 숍이나 클럽 영문 간판이 보이면 동두천이다. 초성리부터 군데군데 연병장과 산기슭에 허연 탄착점들이 눈에 들어온다.

 

1983년 여름, 말년 병장은 어두컴컴한 신탄리 역전다방에 앉아 종일 비디오를 봤다. 접경지 다방에서는 외국의 성애 비디오를 여과없이 돌려댔다. 한낮의 역전 비포장도로는 인적이 없다. 흙먼지 날리는 종착역 나지막한 판자촌은 똑 서부영화 ‘하이눈’의 그 황량한 서부에 다름 아니다. 이리 쓸쓸하던 경원선의 한 곳 신망리역에 2018년 아트공방끄레아 김옥의 대표가 ‘작은미술관’을 열었다. 지난 12월에는 이곳에서 플라스틱 폐품을 활용한 업사이클링 작품전이 열렸다. 김대표는 매년 서너 차례 미술행사로 열차 끊긴 폐역사에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오늘날의 경원선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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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이 원산 밑에서 푹 꺼져 생긴 추가령구조곡은 내륙과 동해를 쉽게 오가는 통로였다. 용산에서 원산까지 경원선 222.7km도 이곳을 통과한다. 이 길은 함흥차사 사행길이요, 동해 건어물이 한양으로 들어온 교역로이며, 함경도로 뛰던 파발로요, 만주 야인과 동해 왜인들이 출입한 관문이다. 일제강점기 북간도 유랑길이고, 하얼빈도 이 길로 두만강 건너 닿는 곳이다. 1940년대 서울 사람들 행락지는 금강산과 명사십리였는데, 용산에서 금강산은 경원선으로 불과 4시간대였다. 철원에서 내금강 가는 전기철로로 금강산에 오른 이가 1936년 한 해에만 15만 명이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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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광리역도 2018년 7월2일부터 연천역-백마고지역 잠정 중단으로 폐쇄된 후, 2019년 4월 1일 전철1호선공사 명분으로 연천에서 경원선은 사라져 버렸다 ⓒ뉴스매거진21

  

1914년 경원선이 완공되자 서울을 중심으로 경부-경의선과 호남-경원선이 X자로 연결됐다. 러일전쟁으로 군수물자 수송 필요해진 일본이 산업·군사 거점 원산을 전국과 연결하려 건설하였다. 그러나 경원선 개통은, 이전에 철원-포천-양주 거쳐 다락원에 닿는 상행에서 경기북부에 떨어지던 경제적 이득을 날려버렸다. 사람과 물자는 다만 열차에 실려 통과할 뿐이다. 이런 면에서 경원선 연결로 남북 교류와 시베리아횡단열차 운행이 이뤄지더라도, 그것이 경기북부에 경제적 이득을 안길 것 같지는 않다. 경기북부 주민들의 경원선 연결 바람은 이로써 평화가 정착되고 산업·생활 규제도 완화되리라는 기대이다. 70여 년 지속된 민간인 소개와 개발제한 풀리기를 바라서이다. 안타까운 점은, 남복 철도복원 논의에서 경원선이 빠졌다는 것이다. 경원선의 단절은 불과 31km에 불과하다. 백마고지역에서 북한 평강까지는 불과 몇 개월 공사로도 이어질 퍽 가벼운 단절이건만.

 

용산에서 한강변 따라 올라가던 경원선은 종착역이 청량리, 성북, 창동, 의정부로 밀려나 지금은 동두천에서 출발한다. 경원선 구간을 용산역과 신탄리역 89km라 하지만, 이는 과거일 뿐 이제 경원선은 거지반 실체가 없다. 동두천역에서 신탄리, 가끔 백마고지나 가는 연천군의 지선 신세에 불과하다. 어쩌면 조만간 경원선 대신 ‘수도권전철 1호선’이라 부르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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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만날 수 없게 된 연천역에 대기중인 백마고지행 DMZ열차 ⓒ뉴스매거진21

 

동두천-연천 복선전철 사업이 내년 봄 끝난다. 빠른 공사를 위해 지난해 4월부터는 열차 운행까지 중단하였다. 그러나 아쉬움이 있다. 거지반 ‘연천선’ 건설인 이 공사가 오히려 연천 주민들에게 폐를 끼치는 모양새이다. 연천을 동서로 가르는 수 km의 높다란 철도 둔덕이 생겨, 연천 벌판의 시원한 조망을 가렸다. 망곡공원에서 연천군청 사이 4개의 건널목이 폐쇄되는 것도 큰 불편이다. 108년 유구한 역사의 연천역사도 사라진다. 어찌 생각하면 주민생활 편리를 증대한다는 복선전철화가, 오히려 연천의 부를 수도권으로 유출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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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명의 구석구석 둘러보다 ②]경원선, 그 흔적마저 사라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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