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압수수색] 죽은 것은 언론이 아닌 검·경과 사법부다
영장 청구-발부-집행에서 총체적 문제.. 법원, 무리한 압색 청구에 '전능' 영장 발부
26일 경찰이 기습적으로 시민언론 민들레 편집국 압수수색에 나섰다. 상근자 10명 안팎의 작은 신생 언론사에 대해 대한민국의 경찰 정예 인력 30여 명이 출동해 6시간 넘게 민들레의 거의 모든 것을 샅샅이 수색했다. 윤석열 정부가 이태원 참사의 진상을 덮고 애도 아닌 관제 애도로 침묵을 강요할 때 진정한 추모와 참사의 진실 찾기를 위한 '긴급 행동'이었던 민들레의 희생자 명단 공개를 ‘중범죄’라도 되는 양 경찰과 검찰, 사법부가 합작해 대규모 병력의 완력으로 밀고 들어왔다. 언론자유에 대한 침탈이고 진실에 대한 억압이며, 정의의 보루로서의 사법부의 한 붕괴였다.
민들레에 대한 압수수색은 영장의 청구에서부터 발부, 집행에 이르기까지 윤석열 정부의 언론에 대한 억압, 권력의 부당한 행사에 공조자로 전락하고 있는 사법부의 현실까지를 총체적으로 보여줬다.
시민언론 민들레는 거듭 밝히거니와 경찰의 압수수색의 부당성을 거듭 규탄한다. 민주주의의 기둥이자 혈관으로서, 헌법적 가치인 언론 활동을 수행하는 언론사에 대한 압수수색은 극도로 자제되고 신중하게 행사돼야 한다. 이는 언론사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시민의 대변기관, 국민의 언론 표현의 대행 기관으로서 언론기관에 대한 공권력의 행사는 언론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서 나온 우리 사회의 오랜 합의이며 규범이다. 지금까지 언론사에 대한 고발이 적잖았지만 언론사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진 적은 거의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찰이 문제로 삼고 있는 시민언론 민들레의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공개는 참사의 발생과 이후 대응 과정에서 보인 정부의 무능과 부실, 나아가 은폐에 대한 긴급행동적 보도 행위였다. 정부가 참사 발생 석 달이 돼 가도록 아직도 희생자 명단을 공개하지 않고 있는 상황은 민들레의 명단 공개의 정당성, 필요성을 다시금 확인시켜주고 있다. 자식을 잃은 단장(斷腸)의 고통을 겪고도 죄인 아닌 죄인 취급을 받아야 했던 상당수 유족들이 "민들레에 보도된 명단을 토대로 유족 모임을 만들 수 있었다"며 감사를 표한 것이 이를 보여준다.
명단 공개 과정에서 민들레가 밝힌 것은 진정한 추모와 애도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 단지 희생자들의 이름뿐이었다. 그 과정에서 민들레는 명단을 입수한 것 외에 다른 어떠한 정보도 갖고 있을 수 없다. 민들레로부터 압수할 것, 수색할 것이 없다는 것은 경찰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을 위한 압수수색인가. 얻어갈 게 없는 압수수색이라면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보여주기인가.
이 같은 이유에서 민들레는 경찰의 압수수색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올 때 부당한 압수수색에 응할 수 없다는 방침을 세운 것은 물론 물론 법원이 그 같은 영장을 발부해 줄 리가 없다고 믿었다. 그것이 한국의 사법부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이며 기대였다.
보여주기 위한 압색, 압색 넘어 시민언론 탄압 의도 의심
그럼에도 경찰과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 청구부터가 무리한 행위였지만 법원은 이를 그대로 승인해 준 것은 물론 압수수색의 대상을 광범위한 정도를 넘어서 거의 모든 것을 뒤지고 압수할 수 있는 ‘전능’ 수준의 영장을 발부해 줬다. ‘관련’ 내용이라는 제한이 실질적으로는 무의미할 정도였다. 민들레의 ‘모든 직원들’에 대해 거의 ‘모든 자료’를 대상으로 한 압수수색, 이는 민들레라는 신생 소규모 언론에 대해 모든 것을 샅샅이 파헤쳐볼 수 있는 무기를 쥐어준 것이나 다름없다.
실제로 경찰은 수색영장 집행 과정에서 민들레의 보도 활동은 물론 이태원 참사와 무관한 자료까지 사실상 민들레의 모든 자료를 뒤지려 했다. 특히 민들레의 회계자료까지 압수를 시도했다가 저지당했다. 경찰은 또 이태원 참사와 무관한 자료와 메모 내용까지 수거해가려고 시도해 압수수색의 진정한 의도를 의심케 했다. 시민들 후원으로 운영되는 민들레의 회계장부에 대한 열람 시도는 곧 후원자들의 면면을 파악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과 무관하게 시민언론 매체의 활동 자체를 탄압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었다.
이번 수사를 맡고 있는 곳이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라는 사실은 더더욱 우리를 참담하게 한다. 민들레의 명단 공개가 설령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라고 하더라도 이것이 왜 부패범죄수사대에서 맡을 사안인가. 민들레가 하루아침에 ‘부패 집단’으로 전락해버리기라도 한 것인가. 경찰 정예 인력 수십 명이 민들레 사무실을 철통 봉쇄하며 이 잡듯 뒤지는 동안 대한민국의 온갖 대형 부패범죄는 그만큼 날개를 펼치고 있었을 것이다.
어느 권력자 일가의 숱한 범죄 혐의에 대해서는 단 한 번의 압수수색이나 소환도 하지 않는 경찰이 30명이 넘는 경찰 인력, 그것도 대한민국 경찰 중 엘리트에 속할 이들이 작은 언론사에 대해 이잡듯이 뒤지는 일에 동원되는 것, 이것이 경찰의 독립을 기원했던 국민들의 성원에 보답하는 방식인가. 경찰이 과연 스스로 독립하고 주체적으로 설 의지와 역량이 있느냐는 것에 우리는 새삼 의문을 던지게 된다.
'언론의 죽음'을 시도했던 26일, 그러나 실제로 죽은 것은 언론이 아니었다. 정당한 권력으로서의 경찰과 검찰의 죽음, 그리고 사법정의의 수호자임을 자임하는 법치의 보루로서의 사법부의 한 죽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