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10-16(목)
댓글 0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기사입력 : 2020.09.29 10:30
  • 프린터
  • 이메일
  • 스크랩
  • 글자크게
  • 글자작게

KakaoTalk_20201009_164450827.jpg지나친 사회적 거리 유지는 0세부터 5~7세까지의 영·유아에게 부모와 친구, 특히 모성애의 따뜻한 체온과 생명의 맥박·호흡을 오감으로 느낄 수 없게 함으로써, 제1차 성장기에 형성되는 정서적 결함의 공백을 남기게 된다.

이 문제는 잠재되어 있다가 사춘기가 되면서 가정과 학교 환경에 따라서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어떤 경우 성인이 되어 결혼 후에 부모와 배우자 관계에서 발현되기도 한다. 이는 모든 부모가 체험한다. “내 자식만 왜 그럴까?” 할 이유가 없다. 집집마다 거의 그러하다. 다만 이러한 문제를 토로하는가? 안 하는가? 그 차이다. 토로하고 서로 상담하는 게 좋을까? 아니면 하지 않는게 좋을까? 답은 자명하다. 안 해 본 후회가 했던 후회보다 더 깊다.

6~8세부터는 두뇌의 발달로 기억력이 왕성해진다. 제2차 성장기이다. 부모로부터 떨어져서 ‘학교라는 제1차 사회’를 만난다.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과의 관계 형성은 ‘제2차 사회인 직장’에서 상사와 부하 그리고 선후배와 동료 관계 맺기의 바탕이 된다.

 

학부모란? 학부모 대표의 역할은 무엇인가? 정부에 해당하는 학교, 정치·행정가에 해당하는 교사와 학생 교육(자존감, 독립심과 헙동심, 미래를 사는 자력양성 등)의 공동목표 달성을 위해 상호 소통과 협력을 해야 한다. 그런데 맞벌이 가정에다가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사태를 만나면서 아이들 교육환경은 미래로 가면 갈수록 심각한 사회문제로 비화될까 우려된다. 코로나라는 정체불명의 화재 진압에 온통 관심이 쏠리는 와중에, 어린이 교육문제라는 눈에 안 보이는 불씨가 점차 커지고 있다.

나폴레옹이 말했다. “교육은 국가 제일의 투자사업이다.” 경제는 현재의 시급한 숙제이지만, 교육은 근본적 과제이다. 가정과 학교, 학교와 사회(기업, 기관)가 정삼각형의 동태적 균형을 유지하도록 정부는 꾸준히·묵묵히 환경을 조성해 나가야 한다. 해결 주체가 되어서는 결코 아니된다. 당대 결과를 보려해서는 더 안된다. 최소한 중학교까지는 좌우 진영논리가 교과과정에 반영되어서는 안된다.

 

비판의식이 형성되는 고등학교에서 역사적 사례 연구의 자주학습과 그룹별 토론과 전체 발표의 상호학습을 통하여 입체적·다면적 학습을 할 수 있도록 교사는 냉정한 촉매 역할, 객관적 코칭 역할을 해야 한다. 교사의 관여도가 낮고, 학생의 참여도가 높을수록 학습효과는 높다. 이른바, 저비용·고효율 고객(학생)주도형 교육인 것이다.

또한 경제는 차치하고, '교육에 관한 한 최소한의 정부'가 되어야 한다. 대학, 특히 사학의 명문대학 총장의 경륜을 존중하지 못할망정, 부족한 학교예산의 보충을 위해 교육부 평가에 연연하게 해서야 되겠는가? 실은 초등학교 현실이 더 심각하다. 학교에서 선생들이 막걸리 파티를 했다는 신문기사가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내가 경험했던 1960년대 국민학교 은사님들과 1970년대 중·고등 학교 은사님들이 지금 와서 돌이켜 보니 얼마나 고마우신 분들이시었는지 지내보아야 알게 되니 말이다.

송죽의 가치는 겨울이 되어야 알고, 부모의 고마움은 떠나봐야 느끼고, 충신의 가치는 사직 후 절감하며, 부부간 소중함은 반쪽이 사라진 자리를 보면 드러나며, 학교의 고마움은 겪어봐야 안다. 초등학교 교육이 시작이다. 시작이 반인 것이 아니다. 제대로 잘 시작해야 반이다(A good start is half-done).

 

그런데 마스크누스 세대인 우리 아이들은 학교의 본질이 무엇인지 모른 채, 친구와도 사회적 거리(실은 물리적 거리다. 사회적 거리가 아니다. 말을 너무 쉽게 쓰는 경향이 무섭다)를 유지할 뿐만 아니라, 맞벌이 가정이 많다 보니 잘 사는 집이나 어려운 집이나 우리 아동들이 거의 방치되는 수준이다. 젊은 부모들은 물론 이를 지켜보거나 손주를 돌보는 할아버지ㆍ할머니 심정은 대책없이 아프기만 하다. 답답한 사람이 우물 파야 하나?

이는 돈으로만 해결될 문제가 결코 아니다. 이때 슈퍼맘과 에코맘이 나서야 한다. 나는 우리나라의 신세대 여성들을 믿는다. 다만 시민의식과 더불어 공동체의식을 더 강화했으면 한다.

 

기업의 사회적 가치 추구도 깨어있는 30~40대 여성들의 사회적 행동(Social Action)에 영향받은 바 크다. 이는 페이스북, 트윗에서부터 밴드와 유튜버 등 소셜미디어가 소통과 확산, 진위 여부를 하루가 안 되서 판명하는 사회적 매체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스마트맘의 등장, 위대한 모성애의 부활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 대ㆍ한ㆍ민ㆍ국은 희망이 있다.

 

다시 강조하건데, 대면·비대면 이분법에 반대한다. 지나친 산업화와 도시화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시대다. 코로나의 근본 원인이 된 생태계의 교란과 지구 온난화에 대한 근본대책인 생태적 행동(EA : Ecological Actions)을 전국민적, 전인류적 차원에서 해야 한다. 마스크 쓰기와 손씻기라는 개인적·물리적 행동만 계속하게 하고 통계적 조작의 오해를 유발하는 조사표본 선정에 인위적 요인이 개입(?)하고 있다면, 감염 확산의 원인을 결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이렇듯 문제해결 과정에서 더 큰 문제를 만들면 안된다. 깨어있는 집단지성의 힘, 슈퍼맘·에코맘 그리고 스마트맘의 위력, 우리 대한민국의 ‘위대한 모성애의 부활’에 희망을 걸고 무한한 신뢰와 지지를 보내고자 한다.

 

 * 누스(nous) : 희랍어로 영혼, 정신, 이성, 지성을 나타냄. 로고스(logos)와 동어로, 만유의 본체이자 만법의 근원임.    

 

 

 

※ 본 기고문은 뉴스매거진2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전체댓글 0

  • 58241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이동하의 ‘마스크누스 세대’를 위하여 ②] 위대한 모성애의 부활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