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특히 경기북부는 한국전쟁후 미군이 주둔하면서부터 생활과 삶의 지평이 송두리째 뒤바뀐 지역이다. 전쟁 폐허더미 위에 지독한 가난과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미군 기지촌으로 몰려 왔다. 미군의 PX경제는 좋은 물건과 상품 그리고 달러가 넘쳐났다. 그야말로 피폐했던 한국엔 유일한 경제해방구였다. 소위 ‘양색시’, ‘양공주’라고 불렀던 미군 위안부들도 이 곳에 오게 되었다. 한국 정부가 국가안보와 경제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미군 위안부를 한편으론 적극 관리 및 통제했고 나아가 그들의 피해를 외면하고 방치했다면서 국가손해배상청구소송을 시작했다. 2014년 6월 미군 위안부 122명과 기지촌여성인권연대, 국가배상소송공동변호인단 등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진행했다. 미군 위안부 손해배상 청구소송 1심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17년 1월 20일 국가의 불법수용상태에서 일률적 처방과 격리수용 치료에 대해서만 인정했으나, 2018년 2월 8일 서울고등법원 제22민사부는 “담당 공무원 등이 주둔 외국군의 사기 진작과 외화 획득한다는 의도로 성매매를 정당화·조장화하여 기지촌 위안부들의 기본적 인권인 인간적 존엄성을 침해했다”면서 “미군 위안부 117명 중 74명에게 정부는 700만원씩 지급하고, 43명에게는 300만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현재 대법원에서 상고심 재판 중에 있다. 본지는 서울고등법원 제22민사부 판결문(2017나2017700)을 입수했고, 사실에 근거해 주요 판결내용을 3차례 나누어서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기초사실부터 명확히 하고, 둘째 기지촌 조성·관리·운영과 성매매 정당화·조장에 대한 판단, 불법행위 단속 면제 및 불법행위 방치에 대한 판단에 이어서 이번 호에서 마지막으로 조직적·폭력적 성병관리에 대한 판단을 정리해 연재한다. [편집자주]

미군 위안부 2심 판결문을 보면
③제2주장(불법행위 단속 면제 및 불법행위 방치)과 제3주장(조직적·폭력적 성병관리)에 대한 판단

제1주장(기지촌의 조성·관리·운영 행위), 제2주장(불법행위 단속면제 및 불법행위 방치), 제3주장(조직적·폭력적 성병관리), 제4주장(성매매 정당화·조장)이다. 4가지 행위는 국가의 보호의무 위반 또는 성매매의 중간매개 및 방조에 해당하여 법령을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원도 제1주장(기지촌의 조성·관리·운영)과 제4주장(성매매 정당화·조장)에 대한 판단, 제2주장, 제3주장에 대해 검토하고 최종적 결론을 도출하였다.
제2주장(불법행위 단속 면제 및 불법행위 방치)에 대한 판단
가. 원고들의 주장요지
피고는 기지촌 운영관리 과정에서 인신매매 등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폭력, 화대 착취, 강제 낙태 등 미군과 포주들에 의한 불법행위가 발생하여 원고들이 구체적으로 구제를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는 국가의 기본권 보호의무를 위반한 것으로서, 이로 인해 원고들은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입었다. 피고 소속 공무원들은 성매매알선업자들과 유착관계에 있었고, 그리하여 원고들을 포함한 기지촌 위안부들이 미군에 의한 살인, 폭행, 감금 등의 범죄피해를 당하고 이를 신고하더라도 경찰이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으며, 성매매알선업자들에 의한 범죄피해를 묵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위안부들이 성매매알선업자들로부터 도망쳐 나와 적극적으로 구조를 요청할 때마저 이를 외면하고 이들을 다시 성매매알선업자에게 넘기는 등의 불법행위를 하였다.
나. 판단
원고들 중 일부가 작성한 진술서에 미군으로부터 폭행을 당하였으나 피고 소속 경찰공무원이 제대로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든가, 인신매매를 당하여 성매매알선업자에게 팔려온 원고가 구조를 요청하였으나 경찰공무원이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러한 원고들 작성의 진술서만으로는, 피고 소속 공무원들과 성매매알선업자들이 유착관계에 있었다거나, 경찰공무원이 원고들의 범죄피해를 고의로 묵인하거나 과실로 이를 방치하였다거나, 이로 인해 경찰이 아무런 수사도 진행하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원고들의 제2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제3주장(조직적·폭력적 성병관리)에 대한 판단
가. 당사자들의 주장요지
1) 원고들
피고는 기지촌 조성과 운영·관리에 있어 헌법상 비례의 원칙과 전염병예방법 등의 근거 법령 등에 위반하여 성병을 관리하였다. 이로 인해 원고들은 신체의 자유, 행복추구권, 인격권 등을 침해당하였고 생명의 위협까지 당하였다. 피고는 원고들의 위와 같은 신체적, 정신적 고통에 대해 국가배상책임을 부담한다.
2) 피고
피고의 성병관리는 원고들의 건강과 공중위생을 위한 성병치료를 목적으로 한 것으로서, 전염병예방법이나 이에 근거한 전염병예방법 시행규칙, 성병검진규정 등의 법령에 근거한 것으로 적법하다.
나-1. 강제격리수용 행위가 형식적 법령에 위반되었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
1) 1977.8.19. 구 전염병예방법 시행규칙의 시행 이전에 이루어진 격리수용치료 행위가 법령에 위반된 것인지 여부를 살펴본다.
구 전염병예방법 제2조 제1항과 제29조 제1항에 의하면, 제1종 전염병과 제3종 전염병 중 ‘라병(癩病,나병)’에 대해서만 격리수용 규정을 두었을 뿐, 성병 감염인은 격리수용하여야 할 환자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따라서 1977.8.19. 까지 성병 환자를 강제로 격리수용할 수 있는 법적근거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위 시점까지 기지촌 위안부들을 강제로 낙검자수용소 등에 격리수용하여 치료한 행위는 법령의 근거가 없는 행위에 해당하므로 위법하다. 모법인 구 전염병예방법 제9조가 강제적으로 건강의 ‘진단’만을 정하고 있을 뿐 강제적인 ‘치료’ 더군다나 이 사건에서 문제되는 격리수용치료에 대하여는 아무런 언급이 없는 이상, 피고의 격리수용치료 행위가 구 성병검진규정에 따른 적법한 행위라고 볼 수는 없다.
2) 1977.8.19. 이후에 이루어진 격리수용치료 행위가 법령에 위반된 것인지 여부를 살펴본다.
1977.8.19. 구 전염병예방법 시행규칙의 제정·시행 이후에 이루어진 격리수용 치료행위라 하더라도, 의사 등 의료전문가의 진단없이 성병의심자에 불과한 위안부들을 곧바로 낙검자수용소 등에 격리수용한 경우, 즉 ① ‘토벌’이라 이름붙여진 합동단속 당시 보건증(패스)을 소지하지 않았거나, 이를 소지하였더라도 정기 성병검진 도장이 찍혀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대상자를 곧바로 격리수용한 행위, ② 외국군이 성병을 옮긴 성매매 상대방으로 지목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의료 진단없이 대상자를 격리수용한 ‘컨택’에 해당하는 행위의 경우, 여전히 법령상 근거없이 행해진 강제수용 내지 사실상의 구금행위로서 위법하다고 봄이 타당하다.
3) 요약
법령상 근거가 존재하지 않았던 1977.8.19. 이전에 이루어진 강제 격리수용행위는 사전에 의료 진단이 있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모두 위법하고, 격리수용에 관한 법령의 근거가 마련된 1977.8.19. 이후의 강제 격리수용행위라 하더라도 의료진단없이 곧바로 이루어진 강제 격리수용조치는 법령에 위반되어 위법하다고 봄이 타당하다. 다만 1977.8.19. 이후 의사 등 의료전문가의 진단을 거쳐 성병 감염자로 판명된 위안부를 격리수용한 행위의 경우에는, 위법성이 있다거나 그에 따른 국가배상책임의 대상이 된다고 할 수 없다.
나-2. ‘토벌·컨택’을 통한 진단없는 격리수용 행위의 위법성에 대한 판단
‘토벌’ 내지 ‘컨택’을 통하여 의사의 진단없이 원고들을 낙검자수용소 등에 강제로 격리수용하여 치료한 행위는, 형식적 법령에 위반되었다는 점과 별도로, 공무원이 마땅히 지켜야 할 인권존중의무 등에 위반하고 객관적 정당성을 결여한 것이라는 면에서도 위법하다고 봄이 타당하다.
행정재량과 헌법상 비례의 원칙에 의하면, 기지촌 내의 성병관리가 긴요한 정책사안이었다 하더라도, 이와 같은 성병 감염의 통제나 이를 통한 보건의 향상증진을 도모하기 위해 실시할 수 있는 행정적 조치들에는 일정한 재량의 한계가 있다. 국가로서는 형식적 법령을 준수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위와 같은 행정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을 시행할 때에는, 목적달성에 유효적절하고(목적의 정당성), 가능한 한 최소한도의 침해를 가져오며(침해의 최소성), 그 수단의 도입으로 인한 침해가 의도하는 공익을 능가하여서는 안된다는(법익의 균형성) 헌법상 비례의 원칙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대법원 1997.9.26. 선고 96누10096 판결 등 참조).
1) 침해 최소성의 원칙
페니실린이 단시간 내에 성병을 치료할 수 있는 효과 좋은 약이라 하더라도, 단지 보건증 미소지 또는 보건증상 정기검진 도장이 없다는 이유만으로(‘토벌’의 경우), 또는 성병에 걸린 성매매 상대방으로 지목당하였다는 이유만으로(‘컨택’의 경우) ‘성병의심자’에 불과하였던 위안부들에게 갖은 쇼크의 부작용을 안고 있는 페니실린을 일률적으로 투약한 것은 신체의 자유 내지 건강이라는 위안부들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한 행위라고 봄이 마땅하다.
2) 목적의 정당성
기지촌 내의 효율적이고 엄격한 성병 관리 및 이를 통한 보건의 향상 자체에도 목적이 있겠지만, 이와 함께 외국군의 사기 진작·앙양과 이를 통한 군사동맹 강화, 그리고 기지촌 성매매 활성화를 통한 외화 획득에도 그 목적이나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즉 피고는 외국군이 안심하고 성매매를 할 수 있도록 기지촌 내 성병감염자를 ‘색출’할 목적으로 ‘토벌’이나 ‘컨택’ 등의 방법으로 성병의심자를 선별한 뒤 별다른 진단절차도 없이 곧바로 격리수용 조치를 행한 면도 있다고 추인할 수 있다. 결국 피고의 위와 같은 격리수용행위에는 그 목적의 정당성 또한 결여되어 있다.
3) 법익의 균형성
성병 감염여부에 대한 의료전문가의 진단없이 위안부들을 강제로 낙검자수용소 등에 격리하고 이들에 대해서까지 무차별적으로 페니실린을 투약한 것은, 그로 인해 위안부들 개개인의 신체적 자유 등 기본권의 침해 정도가 위와 같은 행정 목적이라는 공익을 넘어선 것으로 보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