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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10.05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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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kaoTalk_20201009_164450827.jpg지나친 ‘사회적 거리’ 유지는 직장 선후배와 동료관계는 물론 30년 이상 친구와 부모자식, 형제자매 관계를 멀게 한다. 사회적 거리가 아닌 ‘물리적 간격’을 유지해야 한다. 마치 말라리아 퇴치 일등공신인 모기장과 같다. 모기장은 안과 밖이 보이고 소통이 가능하다. 또한 눈을 보면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눈은 마음의 창이다. 이렇듯 대면한다는 것은 눈과 눈의 마침(E2E : Eye to Eye Contact)이다. 그래서 사회적 거리가 아닌 ‘오손도손 삼삼오오 물리적 간격’에서 소통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최근 사이버 수업으로 교사님, 교수님들 요즘 너무 고생하신다. 기업체 직원 특히 과장급 이상 직책자들도 힘들다. 마우스를 손에 쥐고 있는지도 회사 담당자가 다 감지하고 있다. 공무원들도 힘들기는 매한가지이지만, 복지부동이면 공복도 역사의 종범, 방관범이 된다. 성직자, 교육자, 공무원, 군인은 명예가 소명인 직업이다. 학생과 기업가는 성취동기의 실현, 부모는 자식농사로 현재를 희생한다.

 

해방 전후부터 적어도 1970년 초까지 한국역사는 ‘보릿고개 세대’가 가난과 무지, 나태와 의존의 타성에서 벗어나면서 미군부대 음식 쓰레기로 부대찌개, 꿀꿀이죽을 만들어 허기를 면하였다. 고아와 거지, 상이용사들을 1960년대 어려을 적 보고 살았다. 나의 막내 삼촌도 월남전 두 번 다녀오시어 집도 사서 결혼하셨다. 아라비아 모래사막에서 야밤에 건설노동하고, 독일 광산에서 석탄가루 마시며 죽음을 함께 한 대졸 남성들과, 시체 몸을 닦았던 그 여성들이 모두 다 외화벌이로 경부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 한강 다리와 강벽북로·올림픽도로를 만들었고, 중화학과 철강산업을 일구어 조선·자동차 산업을 부흥시켰다. 그 기반에서 반도체와 정보통신산업이 꽃을 피운 것이다. 시골의 부모는 소를 팔아 자식들을 대학만 보내면 한시름 놓았다. 형님과 큰 누님은 대학을 못 간 것이 아니라 동생들을 위해 시장과 공장, 공사판과 남의 가정에서 일을 했다. 지금 부모님과 형님·누님 세대를 생각하면 눈물이 날 정도이다. 1980년대 이후 태어난 세대가 이 심정을 이해한다면 고마울 따름이다. 그러나 체험도 견문도 없다면 드라마나 영화 한 편 보는 것과 같을 것이다.

 

‘대면·비대면’ 이분법적 구분은 큰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대면·비대면이 아니라 지금은 <성찰·합심의 시대>이다. 산업화 이후 조직 속에서 잊혀진 자아(마음고향)와 소통하고, 생존경쟁으로 소홀해진 가정을 되찾고, 파괴된 자연을 회복시켜야 할 때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빠르면 세 살, 늦어도 열 살 때까지 부모는 자식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알게 모르게 가르쳐야 한다. 억지로 자식농사 안된다. 절대 안된다. 오히려 반항하거나 대화가 단절되기 십상이다. 유치원 때부터 정리·정돈 질서의식과 더불어 사는 법, 협력·협동심을 길러야 한다. 내 자식 소중하면 남의 자식도 소중한 법이다.

 

* 누스(nous) : 희랍어로 영혼, 정신, 이성, 지성을 나타냄. 로고스(logos)와 동어로, 만유의 본체이자 만법의 근원임.

 

※ 본 기고문은 뉴스매거진2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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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하의 ‘마스크누스 세대’를 위하여 ③]보릿고개 부모님 세대를 회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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