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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9.29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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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201009_164450827.jpg태초에 마스크가 있었다? 영아, 유아도 마스크를 한다. 왜 마스크를 해야 하는지 이유도 모른다. 집콕만 하면 출산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사회적 거리를 두니 출산률이 줄 것 같은데도. 이 세대가 자라면 어떠한 삶을 살아갈까? 사회적 거리는 인간의 호흡과 체온을 감지할 수 없는 정서적 공백이다. 감정없는 로봇을 닮아갈까 염려된다.

 

대면·비대면 이분법에 나는 반대한다. 비대면 시장의 증가, 대면 시장의 급감을 가져왔다. 디지털 제국의 등장이다. Rich is rich, poor is poor. 미국에는 백만원 이상 가는 마스크가 팔린다고 한다. 빈익빈, 부익부 빈부차 심화를 국민 세금으로 메우는 것도 한계가 있다. 당장 먹고 살기 위하여 미래 세대가 감당 못할 국가 채무가 쌓여간다. 이때 외환위기, 금융위기가 닥치면 10% 상위층을 제외하곤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다.   

중산층은 점차 줄고, 흙수저는 늘며, 이제 ‘무수저 세대’가 등장할 것이다. 빈부차가 3배 이상되면 형제자매가 멀어지고, 5배 이상 가면 친구와 이웃이 멀어지고, 7배 이상 벌어지면 갈등과 분열이 번지고, 10배 이상되면 소요와 폭력은 물론 국가권력 지상주의, 히틀러 모방 선동정치가 좀비와 더불어 돈으로 민심을 사게 된다. 과거와 현재의 역사가 이를 증거하고 있다.

 

코로나 시대(The With Corona Age)는 지나친 산업화와 도시화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시대이다. 그러나 기업의 상술(?)은 비대면만 강조하고 있다. 이는 주가 상승으로도 나타난다. 영끌들 어쩌나? ‘국가에서 채무탕감해 주겠지?’ 생각하고 신용은 물론 제2금융권 대출까지 받아서 주식에 몰빵하는 것은 분명 국가채무 탕감을 무의식에서 학습받은 것이 아닐까.  

비대면이기 때문에 컴퓨터로 주식시세 보며 사고팔고해도 해고될 리도 없다. 요즘은 해고도 못한다. 기업가 수난시대다. 해고하려 했다가는 노조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집단소송에 걸리면 무죄로 판명되어도 그동안 입은 손실은 엄청날 것이다. 지금의 영아, 유아, 아동, 청소년은 ‘현재도 없는 세대’가 될 것 같다. 지금 이 상태로 3년 이상 지속된다면...  

제조업은 국가경제의 등뼈, 소상공과 영세 여행사 포함 서비스업은 핏줄과 같다. 나는 경고한다. 디지털 기업의 주가는 내재적 가치를 훨씬 넘는 주가, 주당 수익률을 보이고 있지만 이 또한 버블이 될 것이라는 것을. 2000년 초반 인터넷 관련 기업의 주가처럼 말이다.

 

개인은 3개월, 사회는 3년을 같은 패턴으로 살게 되면 습관, 관행이 되고 구조화된다. 틀이 바뀌는 것이다. '세살 버릇 여든 간다' 언젠가는 마스크를 벗게 되겠지만, 인간과 인간의 정서적·심리적 소통과 공감을 못하고 자라난 ‘마스크누스 세대’가 인공지능을 장착한 자율 로봇인간과 놀고, 공부하고, 일하게 될 때, 영화가 현실화될 것이다. X맨 영화라면 참 다행이다.  

더구나 기후온난화의 재앙이 덮친다면 믿을 것은 자기 밖에 없으니 로봇인간과 같이 생존의 길을 모색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노아의 방주가 아닌 '노아의 로봇인간'과 동행하는 <마스크누스 시대>가 싹트고 있다.

 

* 누스(nous) : 희랍어로 영혼, 정신, 이성, 지성을 나타냄. 로고스(logos)와 동어로, 만유의 본체이자 만법의 근원임. 

  

※ 본 기고문은 뉴스매거진2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전체댓글 2

  • 05982
이진종

현싯점에서 세상을 예리하게 찝어주셨네요.
앞으로도 세상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나침판 같은 글 기대합니다.

댓글댓글 (1)
이동하

이진종   >   외손주에게 너무 송구하고 참회합니다. 코로나를 국가차원에서 아니 정권 차원에서 다루면서 으로 길들여가고 있습니다. 게다가, 생태적ㆍ근본적 관점이 아닌 바이러스 질병 차원에서 표피적 접근만 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는 가정과 나라의 미래입니다. 저는 교육붕괴가 더 두렵습니다. 영아ㆍ유아ㆍ아동ㆍ청소년들에게 참회의 심정을 글로써만 드러내는 저의 무력함을 탄핵합니다. 글의 속살까지 보아주심에 감사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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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하의 ‘마스크누스 세대’를 위하여 ①] 마스크누스 세대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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