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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동하의 ‘마스크누스 세대’를 위하여 ⑨]코로나 시대의 인생후반
    나이가 드니 일자일깨, ‘일찍 자고 일찍 깨어나게’ 되나 봅니다. 그리고 삶의 아름다운 마감, 유한한 삶과 남은 시간들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해 궁리도 합니다. 코로나로 사람을 자유롭게 만나지 못하다 보니 내면으로의 성찰 시간을 많이 가집니다. 하루 이틀은 더디게 가는데 한해 두해는 잘만 갑니다. 영원히 살거나,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면 과연 행복할까요? 산다는 것은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아는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가는 인연농사입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별, 작별의 시간이 옵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 테니스장 옆에 쓰레기를 버리던 터를 다시금 살리어 청결하고 재미있는 쉼터를 만들다 보니 새로운 인연을 맺기도 합니다. 얼마전부터 건축학과 나오시어 건설업에 종사하다가 은퇴한 분과 친하게 지냅니다. 거의 매일 큰딸 집에 가서 손자를 돌보며 지낸다고 합니다. 저는 미안하면서도 고맙게도 바깥사돈네께서 매일 외손주를 돌보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열 명 중 네 명이 우울하다고 합니다. 밖으로만 향하다 보면 자기 자신을 잃고, 안으로만 들어가다 보면 사람을 잃습니다. 어떤 경계, 상황 속에서도 안으로 참나를, 밖으로 참너를 만나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니 속 마음을 드러내는 참된 만남을 갖는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나이 들수록 혼자서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내는 소일거리가 있어야 하고, 자동차 한 대로 다닐 수 있는 속살 마음 터놓고 지내는 세 명의 벗, 도반이 있다면 재미있고, 의미있는 인생 후반을 보냅니다. 여기다가 여유와 건강, 가정화목이 함께 한다면, 그동안 알게 모르게 받았던 은덕을 아낌없이 돌려드리고, 은혜를 빠짐없이 갚고 살아야지요.     어떠한 종교이건 영생을 말합니다. 신앙생활의 뿌리는 삶과 죽음에 대한 사생관을 확고·확실하게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십자가에도 신앙을 놓지 않게 됩니다. 설사 특정 종교를 믿지 않는다고 해도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국가관·가치관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의병과 의사, 열사와 열녀, 진지전·백병전의 용사가 있습니다. ‘사즉생, 생즉사’입니다. 죽기로써 행하면 무슨 일인들 못 하겠습니까?   사우나탕의 모래시계는 몇 알이 남아있는지 보이지만, 남은 인생의 시간은 볼 수 없습니다. 시간은 정신의 에너지입니다. 이리 살아도 저리 살아도 삶의 막은 내립니다. 남들 자고 놀 때 제대로 일하고 한푼 두푼 모은 돈을 아낌없이 베푸는 이가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기 직전의 얼굴 표정은 어떠할까요? 엄마품에 안긴 아가의 모습일 것입니다.   * 누스(nous) : 희랍어로 영혼, 정신, 이성, 지성을 나타냄. 로고스(logos)와 동어로, 만유의 본체이자 만법의 근원임.   ※ 본 기고문은 뉴스매거진2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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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16
  • [이동하의 ‘마스크누스 세대’를 위하여 ⑧]코로나시대에도 민주주의는 지켜지고 있는가?
    '선(善)'이란 무엇인가? 가치판단 기준이 완전히 달라지면 우리의 윤리적 정서도 변하는 세상에 맞추어 달라져야 하며, 일상적 삶은 더욱 전향적이고 동태적이라야 한다. 1950년대와 1960년대 한국인은 자신을 희생하며 지금껏 보지 못했던 도전적이고 기적적인 역사를 일궈 냈다. 그들이 젊었던 시절은 지금 세대가 생각조차 못할 정도로 고통과 억압과 불행을 겪으며 살았다. 그런 가운데 새로운 한국역사 창조의 시대적 사명을 완수했다. 오늘날 우리가 잘 살게 되고 행복한 것은 바로 이 분들 덕분이다.   오늘날 우리 한국인은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의 병폐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아시아, 심지어 세계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는 것이라고 때이른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국외에서 국내를 볼 때나, 안에서 밖을 볼 때 ‘우리가 후진하고 있지는 않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은 5천 년을 견뎌온 역사가 있고 외세 침범에 굴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부끄러운 사실은 쇄국으로 변하는 세상에 문을 닫고 살았다는 점이다. 최소한 1960년대까지는 그러했다. 그 결과 국제 사회에서 고립되고 세계에 알려지지 않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민주주의는 정치체제이자 도의이다. 도의는 인간의 삶이 환경변화에 적응하거나 이를 선도하는 훌륭한 훈련을 받을 때 굳건한 것이다. 민주주의 시작점은 인간성 그 자체이다. 인간의 삶에 관한 한, 민주주의는 다수당(여당)의 소리에 기계적으로 좌지우지되서는 안되며, 가장 최선이면서도 시의적절한 의견을 따라야 한다. 이것이 지도자의 책임이다. 사안별로 위대한 소수의 의견을 경청하지 않고 심지어 이를 무시할 때 더 이상 민주주의가 아니고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다수당의 전횡이 된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계속된 국난에도 불구하고 국가적 정체성과 존엄성을 지켜 왔다. 역사가 이를 증거하고 있다. 어떠한 정부도 국민적 합의로 성립하였고, 국민의 신뢰를 상실하면 배제되었다는 사실을 역사가 증언하고 있다. 역사의 신은 인과응보를 반드시 내린다. 종국에는 이를 보게 될 것이다. 구름 자욱한 하늘 위에는 태양이 빛난다. 코로나는 우리의 새로운 역사, 후천개벽을 앞서서 알리는 ‘상두꾼’인 것이다.   * ‘상두꾼’은 유불선 공동체 신앙ᆞ생활 공동체의 ‘향도’였음. 우리나라의 독특한 문화유산 전통임.      ※ 본 기고문은 뉴스매거진2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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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15
  • [이동하의 ‘마스크누스 세대’를 위하여 ⑦]내 몸 안에 의사가 있다
    삼국지에 나오는 화타의 형제는 셋이다. ‘큰형은 Best, 둘째형은 Better, 화타는 Good’ 이라고 스스로 토로했다. 큰형은 보건위생과 면역방역, 식약동원, 체질진단 물론, 예방처방에 능통하여, 사람들이 생활 속 자율·자강·자주(3자)로 스스로 알아차리고 행하게 했다고 한다. 희랍에 히포크라테스가 “병은 자연이 치유하고, 의사는 치료하면서 돈을 가져간다”고 한 말이 떠오른다. 어느 책을 보니 “디스크라는 병은 없다”고 한다. 생활습관과 몸자세에서 오는 것이니 이를 바르게 가지고 자신의 컨디션에 맞는 운동, 산책, 요가, 호흡법, 스트레칭 등을 꾸준히 하면 신체의 회복 탄력성으로 나을 수 있다. 저의 집사람 사례다. “유명한 어느 한의원에 다니면서 시간과 돈만 낭비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몸을 이루는 두뇌와 손발, 눈귀코입, 척추와 허리, 오장육부, 얼굴안색, 호흡과 배설, 입맛의 변화, 수면상태, 아침에 일어났을 때 일어나는 첫 느낌과 생각 등을 유심히 관조·관찰하다 보면(필요시 기록), ‘몸은 만사만리의 근본’이요 ‘내 몸 안에 자연치유력을 보유한 의사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치유 음식(Heeling Food), 치유 수면(Healing Sleeping), 치유 운동(Healing Exercise/Stretching), 치유 음악(Healing Music), 치유 여행(Healing Tour), 치유 산책(Healing Walking), 치유 정원 가꾸기(Healing Gardening), 치유 독서(Healing Reading), 치유 호흡(Healing Breathing), 치유 몰입(Healing Flow) 등 이 중에 하나라도 꾸준히 하면, 우리 몸의 신진대사는 ‘항상성 (Homeostasis)과 균형(Balancing)을 통해 심신의 건강을 유지하여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날이 온다.   심신의 건강관리는 너무 무리하거나, 반대로 소홀히 하면 안된다. 매사 적당히, 대충·대강하는 것이 오래간다. 고기잡이도 그물이 너무 촘촘하면 잔 고기만 잡는 이치와도 같다. 작게 먹고 길게 가고, 틈새 시간을 활용해 꾸준히 해서 때가 차면 효과를 보게 된다. 건강관리는 정해진 하나의 답이 없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소인가?” 라는 어느 유행가 가사에도 일상생활 이치가 담겨있다. 자신의 건강관리 경험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본다. 먹고, 자고, 움직이는 것! 이 세가지가 삶의 기본이다.   1. 식사 위장(정확히 탄수화물 밥통)의 70% ~ 90% 채운다. 맛이 더 댕길 때 음식에서 시선을 떠나야 한다. 음식은 골고루 먹어야 한다. 편식은 정신의 편견과도 같다. 소금도 적절히 먹어야 한다. 비타민이 좋다고 너무 많이 복용하면 오히려 부작용이 온다. 적게 먹는 소식을 한다는 것은 더 먹고 싶을 때 숫가락 놓는 절제이다. 단식은 일상 단식이다. 저녁을 7시경 먹고, 아침도 7시경 먹는 것이 일상 단식, 즉 ‘Break-fast’이다. 사람은 그가 먹는 것이다(Human being is what he/she eats). 들숨이 있으면 날숨이 있다. 밀물이 오면 썰물로 되돌아 간다. 돈이 들어 왔다가도 나갈 때가 되면 나간다. 해가 뜨면 중천에서 지기 시작하고, 달이 차면 기운다. 먹는 것도 채우고서 싹 시원하게 비워야 몸이 한결 가벼워진다. 배설은 식사의 끝이자, 시작이다. 아침에 일어난 후 배설의 원활성은 건강의 바로미터다. 그래서 절에서는 화장실을 우려를 해소하는 ‘해우소’라고 한다.   2. 수면 ‘숙면(Deep Sleep)’이 아니면 수면의 효율이 떨어진다. 하루 종일 공부하고 일한다고 잘 하는 것이 아니듯이, 몰입도가 중요하다. 잠이 올 때는 자야 한다. 억지로 청하면 더 잠이 안 온다. 밤새 뒤척이고 선잠을 자게 되어 오히려 피곤하다. 새벽 1시부터 3시까지는 숙면을 취해야 두뇌와 간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 아침 동틀 무렵 기상후 샤워하면 몸의 세포가 활성화된다. 샤워도 사람 몸의 원리를 알고 해야 효과를 본다. 머리 정수리와 요소는 차가운 물을 잠시 대하게 하면서 ‘오늘 수고도 고마워’하며 부드럽게 자극해 주고, 목뒤(오목한 부위)·손과 팔목, 발과 허벅지 그리고 심장·배·척추는 따뜻한 물로 쓰다듬어 주며 ‘세포들아! 고마워’ 하며 샤워를 하도록 한다. 신체의 각 기관들, 세포들도 하나의 생명체이다. 내 것이라 하며 마음대로 대하면 나쁜 보복이 돌아오고, 감사한 마음으로 대하면 좋은 응답으로 돌아오는 것. 이것이 <인과보응의 이치>다.   3. 운동 ‘과유불급’이다. 몸 컨디션은 스스로가 잘 안다. 남따라 운동하지 말아야 한다. 남이 좋다고 나에게도 좋은 것은 아니다. 친구따라 강남 가다보면 후회하는 때도 있다. 마라톤도 자기 페이스로 해야 한다. 남따라 음식을 안 먹고, 남 잔다고 덩달아 안 자듯이. 노동의 강도, 직업의 스트레스 정도, 그때 그때 몸 상태에 따라 적절한 운동을 해야 한다. 어떠한 운동도 남에게 보여 주려 하지 말고, 하루에 30분에서 1시간 반 정도 자신에 맞는 운동을 꾸준히 해야 한다. 무엇이든 ‘꾸준히, 여유있게, 끝까지’하는 것이 요체다. 노동도 운동처럼 하면 보람도 재미도 있다. 움직임이 멈춘 순간 노화·노쇠 속도가 빨라진다. 인류의 진화는 직립보행하면서 시작되었다. 걷자, 일하자, 공부하자, 푹 쉬자. 호흡의 리듬, 일상의 리듬은 일생의 리듬이다.   내 몸 안에 의사가 있다. 자가면역ㆍ자연치유의 힘을 우리들 모두가 간직하고 있다.   * 누스(nous) : 희랍어로 영혼, 정신, 이성, 지성을 나타냄. 로고스(logos)와 동어로, 만유의 본체이자 만법의 근원임.   ※ 본 기고문은 뉴스매거진2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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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12
  • [이동하의 ‘마스크누스 세대’를 위하여 ⑥]어디로 가야할 것인가?
    코로나로 삶의 형태가 종전과 전혀 다른 세상이 되었다. 대공항 진행, 전쟁의 발발, 성인의 출현도 이처럼 급속한 속도로,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친 적은 인류사에 없다. 인류와 개인의 삶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관점을 달리하고(Fundamental Re-thinking), 기본틀을 철두철미하게 다시금 설계하여(Radical Re-design), 극적으로 전환(Dramatic Transformation)해야 할 시점이다. 다음과 같이 3가지 방향을 제시해 본다.   1. 제5차 산업혁명인 ‘마음산업’ 1969년 인터넷이 이끈 컴퓨터 정보화 및 자동화 생산시스템이 주도한 3차 산업혁명에 이어 로봇, 인공지능(AI), 3D 프린터, 드론, 전자화폐, 센스기술, 네트워크 등 물리학 기술, 생물학 기술, 디지털 기술이 융합한 플랫폼을 기반으로 기존산업의 창조적 파괴, 변화와 혁신의 일상화가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4차 산업혁명으로 기존 일자리 소멸은 마찰적 실업 사태를 낳고 있다. 새로운 일자리 창출은 곧 학교교육의 근본적인 혁신을 요구한다. 세계경제포럼 <직업의 미래 보고서>를 보면 2020년에 요구되는 9가지 능력 중 복잡한 문제해결능력, 사회적 프로세스·시스템 기술, 인지능력 등을 강조하고 있다. 여전히 제4차 산업혁명은 지구생태계 보존, 인간과 자연과의 공존에 대한 생태·생명 윤리관에 합의하지 못 했고, 강약갈등과 빈부차에 따른 계층간 분열에 대한 실효성 있는 해결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제5차 산업혁명인 ‘마음산업(Mind Industry)’은 우리나라가 주도·선도해 나가야 한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한국처럼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나라가 없다. 한국 종교사처럼 신도들이 목숨을 바치면서 믿음을 지킨 나라도 없다. 전국 도처의 순교지를 직접 방문해 보면 피의 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근세말 이후 최수운 대신사, 강증산 대천사, 소태산 대종사도 생태주의, 평등사상, 후천개벽 시대를 알리고 이를 위한 토대와 프로그램까지도 남겼다. 그러나 아직 우리가 이를 다 모르고 있을 뿐이다. 현재 숨겨진 코드를 발견하고, 연구개발하며, 더불어 실행에 박차를 가한다면, 마음산업 선도국인 선진 문화대국의 가능성이 활짝 열려 있다.   2. 국가 최대의 공공사업, ‘교육’ 미국은 1971년 특수교육의 일환으로 영재교육을 수학영재연구회(SMPY)로부터 시작하여, 1988년 연방정부 주도로 영재교육법을 제정하여 대부분의 주정부에서 영재교육을 의무화하고 있다. 서로 다른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개인별 사고력의 함양 및 그룹과제 수행과정에서 복잡한 문제해결능력을 함양시키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농노제도의 철폐, 종교 자유 허용과 더불어 ‘교육은 최대의 공공사업’이라는 신념으로 교육혁신을 단행했다는 점에서 나폴레옹의 업적을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 영국은 토니 블레어 총리 시절에 국가비전실현을 위한 공공사업 관점에서 창의성 함양을 위한 어린이, 청소년, 청년 교육 투자를 시작했다. 학교교육 혁신을 위한 지식혁명 전략계획서 <경쟁력이 있는 미래 : 지식주도 경제 건설(Our Competitive Future: Building the Knowledge Driven Economy)>에서 정부, 기업, 학교 간 창조적 파트너십, 단기이익 추구보다 장기비전 추구, 교육과 과학, 창의적 기업문화 창달에 보다 지속적 투자를 강조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는 우리의 교육과정과 내용에 근본적 변화를 요청하고 있다. 정치와 글로벌 기업에서 자유로운 과학기술 교육과 연구활동(연구기금이 정부나 대기업으로 받게될 경우 가리워진 진실의 ‘결과적’ 공개를 못하게 됨)이 우선적으로 요구되고 있다. 아울러 지구 생태계, 자연과 인간 공존, 강약진화의 공동체 의식, 부모와 정부지원에 의존하지 않는 자력양성 등을 초등학교부터 가르쳐서 몸에 익히는 교육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되겠다.   3. ‘사회적 신뢰자본’의 축적 미국의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는 <신뢰(Trust)>라는 책에서 한 나라의 경제적 번영을 위해서는 경제적 규모만이 아니라 사회적 자본, 특히 사회공동체 구성원 상호간에 소통과 협력, 생산적 갈등관리를 통한 사회적 합의 형성 등을 통한 신뢰자본 축적을 국부의 원천으로 보고 있다. 제프 콜빈은 그의 최근 저서 <인간은 과소평가되고 있다(Humans are under-rated)>에서 “구성원들이 신뢰할 때 조직의 창의력이 더 높아진다”고 하면서 “신뢰를 쌓으려면 직접 만나서 나누는 대화만큼 유용한 것이 없다”는 실증적 조사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 역사에서 사회적 신뢰자본이 가장 풍요로웠던 시대는 세종대왕 통치기간이다. 신분차별을 타파한 집현전(Collective Knowledge Center)이 신뢰자본의 원천이었다.   코로나 시대는 ‘디지털 활동 70%, 피지컬 활동 30%’ 정도의 비율로 사회활동하는 것이 최적이라고 생각한다. 눈빛과 눈빛이 만나고 호흡을 함께 나누는 사회적 교류·교감 활동이 코로나 때문에 더 이상 위축되어서는 안 된다. 물리적 거리는 두더라도 심리적·사회적 공감의 가치가 소중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보건위생에서부터 생태학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인류와 개인의 삶, 그리고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 <집단지성의 집현전 활동>을 활발하게 펼쳐야 할 시점이다.   * 누스(nous) : 희랍어로 영혼, 정신, 이성, 지성을 나타냄. 로고스(logos)와 동어로, 만유의 본체이자 만법의 근원임.   ※ 본 기고문은 뉴스매거진2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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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11
  • [이동하의 ‘마스크누스 세대’를 위하여 ⑤]이제는 일상면역이다!
    우리 몸 속 명의가 있습니다. 자유치유·자연면역 기능이죠. 항상성과 균형은 우주자연과 인간심신의 생명력입니다. 일상생활 속에 문제가 있고 답도 있습니다. 일상생활을 떠난 정치와 종교는, 학교와 기업도 무용할 뿐만 아니라 백해무익합니다.    몸의 항상성과 균형을 위해서는 숙면이 원동력이 되며, 식사와 노동(운동)과 호흡이 추동력이 되고, 스트레스를 안 받거나 즉시 떨쳐버리는 마음내공이 주재력으로 작용합니다. 마음은 자동차 운전수와도 같습니다. 정신수양은 자동차의 에너지(휘발유·경유·가스, 배터리 전기)와 브레이크 오일과도 같습니다. 졸음운전, 방심운전은 금물입니다. 방어운전도 잘 해야 합니다. 고속 주행시는 멀리 보면서도 차간 거리를 유지해야 합니다. 일상점검과 정기검사는 사고를 예방합니다.     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살다 보면 할 수 없이 심신을 무리하거나, 자신을 혹사·희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원인을 알 수 없는 불행이 닥치기도 하고, 오래된 생활습관 잘못으로 성인병에 걸리기도 하며, 불의의 사고를 당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사서 고생하면서’ 삶의 외공·내공을 쌓아 가기도 합니다.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말하지만, 이런 말하시는 분이 만일 자식이 없었다면 번뇌가 없지만 자식 키우는 재미와 보람도 없을 것입니다. 조직생활 스트레스를 안 받으려면 그만 두면 됩니다. 그만 두면 가족과 본인 생계는 누가 책임지나요? 조직은 더 잘 돌아만 가고, 결국 자신이 어리석었음을 깨치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태양이 지구 한 평(3.3 제곱미터)에 빛에너지(열량)를 1초에 10칼로리 보낸다고 가정했을 때, 지표면(땅)에는 과연 몇 칼로리가 도달할까요? 절반 정도인 5칼로리를 지표면이 받아 들인다고 합니다. 야구에서 투수와 포수가 호흡이 맞으면 철강수비가 됩니다. 공격보다 수비가 중요합니다. 질병도 사후 치료보다 사전 예방이 우선입니다. ‘문제의 핵심인 문제점’은 내 안, 우리 팀, 우리 조직 속에 있습니다. 이처럼 수비와 예방이란 밖이 아니라 안의 문제점을 없애는 것입니다. 가는 것이 있어야 오는 것이 있고, 주는 것이 있어야 받는 것이 있습니다. ‘인과응보의 이치’라고 합니다. 여기서 저는 이견이 있습니다. 말도 글도 한 단어 빠지면 오해와 왜곡이 생깁니다. ‘인과?’ 아닙니다. ‘인·연·과’입니다. 〈인 × 연 = 과〉 이렇게 인연복이란 궁합·화합·정합에서 온다고 봅니다.   법언에 "채무자는 기억력이 나쁘다"라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태양이 무념무상·무량무수로 빛에너지를 지구에게 주어도 지구 지표면으로 도달하는 과정에서 성층권, 대기권에서 차단과 회절, 반사 등으로 절반만 받았다고 생각합니다(지표면이 생명이라면). 태양과 지구 관계도 이러한데,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상사와 부하, 선배와 후배, 비즈니스 파트너 간에는 오죽하겠습니까? 그래서 기억은 못 믿으니 기록을 꾸준히 해야 합니다. 기록조차도 주관적으로 남기는데, 하물며 기억은 오죽 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코로나에 대한 자연치유, 자연면역도 일상 속 기록을 남겨야 합니다. “내 몸에 무엇을 주고 받았는지? 음식과 공기 등을. 또 누구와 함께 오고 갔는지?”   * 누스(nous) : 희랍어로 영혼, 정신, 이성, 지성을 나타냄. 로고스(logos)와 동어로, 만유의 본체이자 만법의 근원임.   ※ 본 기고문은 뉴스매거진2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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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08
  • [이동하의 ‘마스크누스 세대’를 위하여 ④]말과 돈도 제대로 써야 한다
    이 세상 모든 어머니는 '모성애'를 지니는 한 투지력이 있다. 어떠한 곤경에서도 자식농사를 위해 한 몸을 희생한다. 어머니 주름 안에 세월강이 흐른다. ‘부성애’를 지닌 아버지는 인내력이 있다. 그래서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조직생활하면서 간ㆍ쓸개를 빼고 돈 번다. 아버지 미소엔 눈물이 숨겨있다. 가정은 어머님의 투지력과 아버님의 인내력으로 지탱된다. 삶은 투지와 인내의 연속이다. 부모의 삶은 자식을 위한 사랑과 희생의 삶이다. 이는 다른 동물도 대체로 그러하다. 종족보존을 위한 본능의 발로이다. 때로는 자연의 본능이 사회의 도덕보다 우선한다. 인간의 도덕은 과학의 산물이다. 과학은 미신이 아닌 사실적 인연과 관계를 알게 한다. 과학을 등지는 종교는 말씀을 팔아먹고 사는 일종의 비즈니스다.   친족법의 친권은 권리없는 의무다. 부양·양육의 의무다. 이는 자식이 독립할 때까지 자력양성을 위함이다. 조직의 인사권과 예선권도 조직의 생존보존과 지속성장을 위한 친권과 같다. 굳이 다르다고 한다면 권리와 의무 대응이다. 의무 이행을 위하여 한정적으로 주어진 ‘권한’이다. 권한 위임은 예시형이 아니다. 제한된, ‘이것, 이것에 한하여’라는 열거형이다. 자유재량의 남용·오용을 막기 위함이다. 무엇, 무엇을 다 밝혀야 한다. 오해와 오판, 불신과 분쟁을 예방하기 위함이다. 자연인이 아닌 법인도 인격이 있다. 회사는 영구히 존속·발전해야 한다. 회사법, 즉 상법의 존재 목적이다. 그래서 오너도, CEO도 구성원과 주주, 고객과 투자가, 협력사에게 함부로 할 수 없다. 회사가 자기 것이라 주장하는 순간부터 이른바 ‘갑질’이 시작된다. 이는 정부도 마찬가지다. ‘선관의무’ 즉 선량한 관리자로서 주의의무(충실 복무, 사실 보고 등)를 다해야 한다. 세금도 함부로 쓰면 죄가 성립한다. 기업이 망하여 실업사태를 일으키고 지역사회 경제를 훼손하면 안 된다. 기업 역시 견실한 경제적 가치(건전한 재무구조, 현금창출력)을 보유한 기업만이 고루ㆍ두루 나눔의 사회적 가치를 추구할 수 있다.   인간욕구이론에 알더퍼(Aldetfer)의 ERG 모델이 있다. 기본적 생존욕구(Existence), 사회적 관계욕구(Relationship), 자아실현 성장욕구(Growth)이다. 임금과 복리후생, 상하좌우 인간관계와 일체감, 그리고 도전과 성취, 일에 대한 기쁨(Joy on my Job), 조직의 미래에 대한 확신, 개인과 가정의 행복이다. 인간에게 빵은 선결과제다. 그러나 빵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하다. 의학•제약기술과 힐링산업 발전에 따라 이제는 건강조차도 돈으로 살 수 있다. 그러나 ‘의미있는 삶의 후반’은 돈으로 살 수 없다. 큰 저택은 돈으로 살 수 있다. 그러나 스위트 홈을 돈으로만 사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 돈은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삶의 필수 비타민이지만 과잉 섭취하면 필요한 만큼만 남고 빠져 나간다. 때로는 부작용을 빚는다. 이렇듯 약이 독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돈은 과유불급인 것이다.   돈은 소중하다. ‘돈이 뭐 필요한가?’며 무소유를 논하는 이는 돈을 벌어본 사람이 말해야 진정성·신뢰성이 간다. 그러나 돈벌이가 목적이 되는 순간부터 돈에 구속당하는 삶이 된다. 입에서 말이 나가기 전까지는 내가 말을 자제할 수 있지만, 일단 말을 뱉고 난 다음엔 말이 나를 구속하기 시작한다. 결국 돌고 돌아 화살촉이 되어 내게 되돌아온다.     돈도 돈나름, 말도 말나름이다. 돈의 가치는 벌 때보다는 잘 쓸 때 나온다. 말의 가치도 잘 듣고나서 말할 때 높아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돈도, 말도 화근이 되기도 하지만 복근이 되기도 한다.   하늘에서 돈벌게 해 주는 댓가로 주어진 돈을 고루·두루·널리 잘 쓰라고 일시적으로 맡겨두었다고 여긴다면, 돈을 쓰더라도 돌고 돌아 이자까지 붙어 내 복주머니 속에 되돌아온다. 하늘에서 말하게 해 주는 축복을 내린 댓가로 긍정의 말, 격려의 말, 감사의 말을 하고 살면, 입은 복이 들어오는 홍살문이 된다.   * 누스(nous) : 희랍어로 영혼, 정신, 이성, 지성을 나타냄. 로고스(logos)와 동어로, 만유의 본체이자 만법의 근원임.       ※ 본 기고문은 뉴스매거진2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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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08
  • [이동하의 ‘마스크누스 세대’를 위하여 ③]보릿고개 부모님 세대를 회상하며
       지나친 ‘사회적 거리’ 유지는 직장 선후배와 동료관계는 물론 30년 이상 친구와 부모자식, 형제자매 관계를 멀게 한다. 사회적 거리가 아닌 ‘물리적 간격’을 유지해야 한다. 마치 말라리아 퇴치 일등공신인 모기장과 같다. 모기장은 안과 밖이 보이고 소통이 가능하다. 또한 눈을 보면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눈은 마음의 창이다. 이렇듯 대면한다는 것은 눈과 눈의 마침(E2E : Eye to Eye Contact)이다. 그래서 사회적 거리가 아닌 ‘오손도손 삼삼오오 물리적 간격’에서 소통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최근 사이버 수업으로 교사님, 교수님들 요즘 너무 고생하신다. 기업체 직원 특히 과장급 이상 직책자들도 힘들다. 마우스를 손에 쥐고 있는지도 회사 담당자가 다 감지하고 있다. 공무원들도 힘들기는 매한가지이지만, 복지부동이면 공복도 역사의 종범, 방관범이 된다. 성직자, 교육자, 공무원, 군인은 명예가 소명인 직업이다. 학생과 기업가는 성취동기의 실현, 부모는 자식농사로 현재를 희생한다.   해방 전후부터 적어도 1970년 초까지 한국역사는 ‘보릿고개 세대’가 가난과 무지, 나태와 의존의 타성에서 벗어나면서 미군부대 음식 쓰레기로 부대찌개, 꿀꿀이죽을 만들어 허기를 면하였다. 고아와 거지, 상이용사들을 1960년대 어려을 적 보고 살았다. 나의 막내 삼촌도 월남전 두 번 다녀오시어 집도 사서 결혼하셨다. 아라비아 모래사막에서 야밤에 건설노동하고, 독일 광산에서 석탄가루 마시며 죽음을 함께 한 대졸 남성들과, 시체 몸을 닦았던 그 여성들이 모두 다 외화벌이로 경부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 한강 다리와 강벽북로·올림픽도로를 만들었고, 중화학과 철강산업을 일구어 조선·자동차 산업을 부흥시켰다. 그 기반에서 반도체와 정보통신산업이 꽃을 피운 것이다. 시골의 부모는 소를 팔아 자식들을 대학만 보내면 한시름 놓았다. 형님과 큰 누님은 대학을 못 간 것이 아니라 동생들을 위해 시장과 공장, 공사판과 남의 가정에서 일을 했다. 지금 부모님과 형님·누님 세대를 생각하면 눈물이 날 정도이다. 1980년대 이후 태어난 세대가 이 심정을 이해한다면 고마울 따름이다. 그러나 체험도 견문도 없다면 드라마나 영화 한 편 보는 것과 같을 것이다.   ‘대면·비대면’ 이분법적 구분은 큰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대면·비대면이 아니라 지금은 <성찰·합심의 시대>이다. 산업화 이후 조직 속에서 잊혀진 자아(마음고향)와 소통하고, 생존경쟁으로 소홀해진 가정을 되찾고, 파괴된 자연을 회복시켜야 할 때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빠르면 세 살, 늦어도 열 살 때까지 부모는 자식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알게 모르게 가르쳐야 한다. 억지로 자식농사 안된다. 절대 안된다. 오히려 반항하거나 대화가 단절되기 십상이다. 유치원 때부터 정리·정돈 질서의식과 더불어 사는 법, 협력·협동심을 길러야 한다. 내 자식 소중하면 남의 자식도 소중한 법이다.   * 누스(nous) : 희랍어로 영혼, 정신, 이성, 지성을 나타냄. 로고스(logos)와 동어로, 만유의 본체이자 만법의 근원임.   ※ 본 기고문은 뉴스매거진2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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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05
  • [이동하의 ‘마스크누스 세대’를 위하여 ②] 위대한 모성애의 부활
    지나친 사회적 거리 유지는 0세부터 5~7세까지의 영·유아에게 부모와 친구, 특히 모성애의 따뜻한 체온과 생명의 맥박·호흡을 오감으로 느낄 수 없게 함으로써, 제1차 성장기에 형성되는 정서적 결함의 공백을 남기게 된다. 이 문제는 잠재되어 있다가 사춘기가 되면서 가정과 학교 환경에 따라서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어떤 경우 성인이 되어 결혼 후에 부모와 배우자 관계에서 발현되기도 한다. 이는 모든 부모가 체험한다. “내 자식만 왜 그럴까?” 할 이유가 없다. 집집마다 거의 그러하다. 다만 이러한 문제를 토로하는가? 안 하는가? 그 차이다. 토로하고 서로 상담하는 게 좋을까? 아니면 하지 않는게 좋을까? 답은 자명하다. 안 해 본 후회가 했던 후회보다 더 깊다. 6~8세부터는 두뇌의 발달로 기억력이 왕성해진다. 제2차 성장기이다. 부모로부터 떨어져서 ‘학교라는 제1차 사회’를 만난다.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과의 관계 형성은 ‘제2차 사회인 직장’에서 상사와 부하 그리고 선후배와 동료 관계 맺기의 바탕이 된다.   학부모란? 학부모 대표의 역할은 무엇인가? 정부에 해당하는 학교, 정치·행정가에 해당하는 교사와 학생 교육(자존감, 독립심과 헙동심, 미래를 사는 자력양성 등)의 공동목표 달성을 위해 상호 소통과 협력을 해야 한다. 그런데 맞벌이 가정에다가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사태를 만나면서 아이들 교육환경은 미래로 가면 갈수록 심각한 사회문제로 비화될까 우려된다. 코로나라는 정체불명의 화재 진압에 온통 관심이 쏠리는 와중에, 어린이 교육문제라는 눈에 안 보이는 불씨가 점차 커지고 있다. 나폴레옹이 말했다. “교육은 국가 제일의 투자사업이다.” 경제는 현재의 시급한 숙제이지만, 교육은 근본적 과제이다. 가정과 학교, 학교와 사회(기업, 기관)가 정삼각형의 동태적 균형을 유지하도록 정부는 꾸준히·묵묵히 환경을 조성해 나가야 한다. 해결 주체가 되어서는 결코 아니된다. 당대 결과를 보려해서는 더 안된다. 최소한 중학교까지는 좌우 진영논리가 교과과정에 반영되어서는 안된다.   비판의식이 형성되는 고등학교에서 역사적 사례 연구의 자주학습과 그룹별 토론과 전체 발표의 상호학습을 통하여 입체적·다면적 학습을 할 수 있도록 교사는 냉정한 촉매 역할, 객관적 코칭 역할을 해야 한다. 교사의 관여도가 낮고, 학생의 참여도가 높을수록 학습효과는 높다. 이른바, 저비용·고효율 고객(학생)주도형 교육인 것이다. 또한 경제는 차치하고, '교육에 관한 한 최소한의 정부'가 되어야 한다. 대학, 특히 사학의 명문대학 총장의 경륜을 존중하지 못할망정, 부족한 학교예산의 보충을 위해 교육부 평가에 연연하게 해서야 되겠는가? 실은 초등학교 현실이 더 심각하다. 학교에서 선생들이 막걸리 파티를 했다는 신문기사가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내가 경험했던 1960년대 국민학교 은사님들과 1970년대 중·고등 학교 은사님들이 지금 와서 돌이켜 보니 얼마나 고마우신 분들이시었는지 지내보아야 알게 되니 말이다. 송죽의 가치는 겨울이 되어야 알고, 부모의 고마움은 떠나봐야 느끼고, 충신의 가치는 사직 후 절감하며, 부부간 소중함은 반쪽이 사라진 자리를 보면 드러나며, 학교의 고마움은 겪어봐야 안다. 초등학교 교육이 시작이다. 시작이 반인 것이 아니다. 제대로 잘 시작해야 반이다(A good start is half-done).   그런데 마스크누스 세대인 우리 아이들은 학교의 본질이 무엇인지 모른 채, 친구와도 사회적 거리(실은 물리적 거리다. 사회적 거리가 아니다. 말을 너무 쉽게 쓰는 경향이 무섭다)를 유지할 뿐만 아니라, 맞벌이 가정이 많다 보니 잘 사는 집이나 어려운 집이나 우리 아동들이 거의 방치되는 수준이다. 젊은 부모들은 물론 이를 지켜보거나 손주를 돌보는 할아버지ㆍ할머니 심정은 대책없이 아프기만 하다. 답답한 사람이 우물 파야 하나? 이는 돈으로만 해결될 문제가 결코 아니다. 이때 슈퍼맘과 에코맘이 나서야 한다. 나는 우리나라의 신세대 여성들을 믿는다. 다만 시민의식과 더불어 공동체의식을 더 강화했으면 한다.   기업의 사회적 가치 추구도 깨어있는 30~40대 여성들의 사회적 행동(Social Action)에 영향받은 바 크다. 이는 페이스북, 트윗에서부터 밴드와 유튜버 등 소셜미디어가 소통과 확산, 진위 여부를 하루가 안 되서 판명하는 사회적 매체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스마트맘의 등장, 위대한 모성애의 부활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 대ㆍ한ㆍ민ㆍ국은 희망이 있다.   다시 강조하건데, 대면·비대면 이분법에 반대한다. 지나친 산업화와 도시화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시대다. 코로나의 근본 원인이 된 생태계의 교란과 지구 온난화에 대한 근본대책인 생태적 행동(EA : Ecological Actions)을 전국민적, 전인류적 차원에서 해야 한다. 마스크 쓰기와 손씻기라는 개인적·물리적 행동만 계속하게 하고 통계적 조작의 오해를 유발하는 조사표본 선정에 인위적 요인이 개입(?)하고 있다면, 감염 확산의 원인을 결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이렇듯 문제해결 과정에서 더 큰 문제를 만들면 안된다. 깨어있는 집단지성의 힘, 슈퍼맘·에코맘 그리고 스마트맘의 위력, 우리 대한민국의 ‘위대한 모성애의 부활’에 희망을 걸고 무한한 신뢰와 지지를 보내고자 한다.    * 누스(nous) : 희랍어로 영혼, 정신, 이성, 지성을 나타냄. 로고스(logos)와 동어로, 만유의 본체이자 만법의 근원임.           ※ 본 기고문은 뉴스매거진2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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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29
  • [이동하의 ‘마스크누스 세대’를 위하여 ①] 마스크누스 세대의 등장
    태초에 마스크가 있었다? 영아, 유아도 마스크를 한다. 왜 마스크를 해야 하는지 이유도 모른다. 집콕만 하면 출산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사회적 거리를 두니 출산률이 줄 것 같은데도. 이 세대가 자라면 어떠한 삶을 살아갈까? 사회적 거리는 인간의 호흡과 체온을 감지할 수 없는 정서적 공백이다. 감정없는 로봇을 닮아갈까 염려된다.   대면·비대면 이분법에 나는 반대한다. 비대면 시장의 증가, 대면 시장의 급감을 가져왔다. 디지털 제국의 등장이다. Rich is rich, poor is poor. 미국에는 백만원 이상 가는 마스크가 팔린다고 한다. 빈익빈, 부익부 빈부차 심화를 국민 세금으로 메우는 것도 한계가 있다. 당장 먹고 살기 위하여 미래 세대가 감당 못할 국가 채무가 쌓여간다. 이때 외환위기, 금융위기가 닥치면 10% 상위층을 제외하곤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다.    중산층은 점차 줄고, 흙수저는 늘며, 이제 ‘무수저 세대’가 등장할 것이다. 빈부차가 3배 이상되면 형제자매가 멀어지고, 5배 이상 가면 친구와 이웃이 멀어지고, 7배 이상 벌어지면 갈등과 분열이 번지고, 10배 이상되면 소요와 폭력은 물론 국가권력 지상주의, 히틀러 모방 선동정치가 좀비와 더불어 돈으로 민심을 사게 된다. 과거와 현재의 역사가 이를 증거하고 있다.   코로나 시대(The With Corona Age)는 지나친 산업화와 도시화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시대이다. 그러나 기업의 상술(?)은 비대면만 강조하고 있다. 이는 주가 상승으로도 나타난다. 영끌들 어쩌나? ‘국가에서 채무탕감해 주겠지?’ 생각하고 신용은 물론 제2금융권 대출까지 받아서 주식에 몰빵하는 것은 분명 국가채무 탕감을 무의식에서 학습받은 것이 아닐까.   비대면이기 때문에 컴퓨터로 주식시세 보며 사고팔고해도 해고될 리도 없다. 요즘은 해고도 못한다. 기업가 수난시대다. 해고하려 했다가는 노조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집단소송에 걸리면 무죄로 판명되어도 그동안 입은 손실은 엄청날 것이다. 지금의 영아, 유아, 아동, 청소년은 ‘현재도 없는 세대’가 될 것 같다. 지금 이 상태로 3년 이상 지속된다면...   제조업은 국가경제의 등뼈, 소상공과 영세 여행사 포함 서비스업은 핏줄과 같다. 나는 경고한다. 디지털 기업의 주가는 내재적 가치를 훨씬 넘는 주가, 주당 수익률을 보이고 있지만 이 또한 버블이 될 것이라는 것을. 2000년 초반 인터넷 관련 기업의 주가처럼 말이다.   개인은 3개월, 사회는 3년을 같은 패턴으로 살게 되면 습관, 관행이 되고 구조화된다. 틀이 바뀌는 것이다. '세살 버릇 여든 간다' 언젠가는 마스크를 벗게 되겠지만, 인간과 인간의 정서적·심리적 소통과 공감을 못하고 자라난 ‘마스크누스 세대’가 인공지능을 장착한 자율 로봇인간과 놀고, 공부하고, 일하게 될 때, 영화가 현실화될 것이다. X맨 영화라면 참 다행이다.   더구나 기후온난화의 재앙이 덮친다면 믿을 것은 자기 밖에 없으니 로봇인간과 같이 생존의 길을 모색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노아의 방주가 아닌 '노아의 로봇인간'과 동행하는 <마스크누스 시대>가 싹트고 있다.   * 누스(nous) : 희랍어로 영혼, 정신, 이성, 지성을 나타냄. 로고스(logos)와 동어로, 만유의 본체이자 만법의 근원임.     ※ 본 기고문은 뉴스매거진2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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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29
  • [기고]동두천시장에게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생각을 묻는다
    동두천시에는 단 한 대의 저상버스도 다니지 않고 있다. 지난 2019년 12월 한 시의원이 동두천시에 저상버스가 단 한 대도 없다고 발언하면서, 저상버스 도입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최용덕 동두천시장은 “버스회사의 재정상황이 어렵고 저상버스 운행에 적합하지 않은 도로가 일부 있으며 승차 인원이 적어 도입이 어렵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콜밴을 이용하라는 태도로 일관하였다. 뒤이어 그 시의원은 콜밴의 법정 최소 보유댓수는 17대이지만, 현재 동두천시는 14대를 가지고 있다고 증차를 요구하였다. 이 또한 최 시장은 “이용객 수에 비하여 콜밴이 부족하지 않다는 이유로 어렵다”고 답변하였다.   콜밴은 다인승 승용차를 개조하여 각종 장애인 편의시설 및 승하차 보조장치를 설치한 자동차로써, 장애인들이 편하게 타고 다닐 수 있는 택시이다. 그러나 댓수가 적고, 본질적으로 휠체어 등을 타고 다니는 장애인들을 비장애인과 분리하는 제도이며, 콜밴은 시내버스의 보조 운송수단이지 주 운송수단이 될 수 없다.   저상버스는 차체가 낮아 장애인들도 쉽게 타고 내릴 수 있게 만든 버스이다. 약간의 특수 장비만 사용하면 휠체어도 이용할 수 있다. 장애인 누구나 쉽게 탈 수 있다면, 거동이 어려운 노인, 몸이 불편한 시민들도 쉽게 타고 내릴 수 있는 버스이다. 저상버스는 장애인만을 별도로 배려하는 시혜적인 버스가 아닌 모든 시민의 편의를 보장하는 버스이다.   인근의 포천시는 간선버스노선인 72번 등에 저상버스를 이미 도입했으며 최근 외곽노선에 3대의 저상버스를 추가 투입하는 등, 저상버스 확충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의정부시는 시에서 관할하는 총 314대의 버스 중 57대를 저상버스로 운행하고 있다. 저상버스는 대당 2~4억 정도하는 버스이며 법적으로 국가나 경기도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재정여력이 걱정된다면 노후차량 교체분 및 신규 차량 구입 분부터 순차적으로 저상버스를 도입할 수도 있다.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버스의 경우 노선 간 차량 이동배치가 가능하다. 저상버스 도입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현재 동두천시를 통과하는 36번과 39, 39-4번 버스는 수도권 곳곳에서 저상버스를 이미 운행하고 있는 국내 굴지의 버스 대기업 자회사가 운영하고 있고, 지역을 넘어 자회사 간의 차량 이동배치가 이루어지기도 하며, 53번 등을 운행하는 대양운수는 동두천시 지원금으로 운영하고 있다. 즉 동두천시의 행정적인 노력으로 저상버스를 쉽게 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중교통은 모든 사람이 편하게 마음먹은 목적지까지 통행을 원활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성별과 장애, 사는 지역 등과 관계 없이 모두가 편하게 이용하게 하는 것은 공공성을 확보하는 일이고, 기본적인 이동권을 보장한다는 의미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동두천시는 시민들을 위하여 대중교통망을 효율적으로 계획하고, 모든 시민들이 저렴한 운임으로 자유롭고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저상버스는 모두가 편리하고 평등한 정책의 전형이다. 저상버스의 도입은 어렵지 않으며 최소한의 비용으로 가장 많은 시민의 이동권을 보장할 수 있다. 동두천시는 저상버스를 하루 속히 도입하기 바란다.   ※ 본 기고문은 뉴스매거진2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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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18
  • [기고]안전도시 포천, ‘한국형청소차’ 도입 필요해
    지난 6월 포천시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생활폐기물 수거대행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감사를 하면서 ‘한국형청소차 도입 제안’을 했습니다.   포천시 친환경정책과에서 노동자분들께 의견을 묻고 최근 인근지역 답사도 다녀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형청소차가 도입에 대해 여러 의견들이 있다고 합니다. 제안한 의원으로서 도입의 필요성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차에 매달려가는 노동자가 너무나 위험해 보였고 차량이 속도를 내다가 자칫 발이라도 헛디디면 큰 사고가 날 수 있어 환경미화원의 안전에 대한 대책이 절실하여 자료를 찾아 보았습니다. 지난 2012년 환경부는 지자체에 청소차 발판과 같은 불법 구조물 철거를 권고했고, 지자체도 관련 교육을 하고 있지만, ‘환경미화원의 발판’ 관행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차량에 발판을 설치하는 것은 자동차관리법상 불법 튜닝에 해당하며 또 매달려 이동하는 행위도 사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산업안전보건기준과 도로교통법에서 금지하고 있습니다. 고용노동부 등이 2018년 발표한 환경미화원 작업안전수칙 가이드에 따르면 “2015~2017년 전국 총 1천822명 환경미화원 산업재해자 중 수거차량으로 재해를 입은 사람은 37.3%(679명)를 차지했으며, 산업재해 사망자 18명 중 2명은 청소차량에서 떨어져 숨졌다”고 합니다.     한국형청소차는 환경미화원의 잦은 승·하차와 작업환경 등을 고려해 2018년 환경부에서 한국형청소차를 개발했고, 현장에선 환경미화원의 안전을 위해 ‘한국형청소차’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형 청소차량을 구입하려면 기존 차량의 내구연한 등이 지나야 하기에 점차 나아가야 할 문제이며, 한국형청소차는 현재 사용하는 차량에 비해 대당 2천여만원 가량 더 비싼 만큼 예산이 더 필요합니다. 별도의 탑승공간이 생겨 적재공간이 그만큼 줄어 들기 때문에 집행부, 대행업체, 노동자, 전문가들과 운영방법을 충분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을겁니다.   코로나19가 안정되면 바로 논의할 수 있도록, ‘포천시 청소행정과 발전방향’이라는 주제로 여러 전문가님들을 모시고 토론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 본 기고문은 뉴스매거진2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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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13
  • [기고]똑똑한 ‘전공의’, 그러나 거기에 국민은 없었다
    정부-여당과 의협간 흥정에 반발하던 전공의협의회가, 정부를 용납할 수 없으나, 적전 분열은 오히려 적(정부-여당)을 이롭게 할 뿐이라는 논리로, 일단 집단휴진을 풀고 일터로 돌아가기로 했다가, 하루사이에 내부 반발에 부딪혀 파업(집단 휴진)을 유지하기로 했단다. 그와 동시에 이들은 곧 있을 대한의사협회를 장악하겠다는 계획과 전공의 노조를 만들어 자신들의 이해를 확실히 관철해 가며, 언제고 대정부 투쟁체계를 갖추어 가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약하게만 보았던 청년의 모습이 아니다. 상황판단 능력, 단순명료한 논리, 설득력있는 말솜씨, 그리고 강력한 리더십까지 그 어느 것 하나 어설픈 데가 없다. 완벽하다. 미래세대 능력에 감탄이 절로 난다. 훌륭하다! 당신들을 통해서나마 우리 청춘들이 가진 열정과 실천력을 확인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칭찬은 여기까지다.   나는 당신들 발언을 들으며, 똑똑한 바보들의 전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들 말과 행동엔 오직 우리 '전공의' 밖에는 없고, 내용은 '요구'와 '원망'이 전부다.우리는 이래서 억울하고, 우리는 이래서 힘들고, 우리는 이걸 원하는데, 그들은 우리를 이렇게 속였고, 그들은 우리가 원하는 이걸 안 해줬고... 그래서 우리는 노조를 만들어 강력하기 우리의 요구를 관철할 거야... 우리 '전공의' 밖에는 없다. 직장을 뛰쳐나온 이유도, 직장에 돌아가는 이유도, 노조를 만들겠다는 이유도 모두 우리 '전공의' 뿐이다. 그 어디에도 ‘국민’에 대한 배려나 국민을 위한 책임은 없다. 고민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자님같은 말씀하고 앉았다고? 때늦은 직업윤리 타령하고 있다고?국가가 예산을 들이고, 국민이 건강보험료를 세금처럼 내는 까닭은 그것이 공공재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생명은 귀중한 것이고,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한다. 그래서 병원을 만들고 의사를 길러내는 것이다. 당신들 눈에는 의사와 환자만 보이겠지만, 국가가 국민건강이란 목표를 갖고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엄청난 공간 안에서 당신들은 의료 행위를 하고 있다. 그 공간에는 당신들만 있는 게 아니라, 간호사를 비롯한 다양한 의료인과 국민이 있다. 완벽하든 하지 않든 의료는 국가 시스템 안에서 작동하고 있다. 본질적으로 공공재적인 성격을 지닐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개인병원 의사도 공익적 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이유다.   당신들도 다 같은 국민이니 불만이 있으면 국가에 대들 수 있다. 이를 탓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국민에 대해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당신들은 국가에 요구할 줄은 알지만, 국민에게 뭘 책임져야 하는지는 모른다. 나는 그 원인이 당신들의 협소한 시각에 있다고 본다. 자신 이외에는 단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의료가 하나의 직업을 넘어, 왜 사회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지, 단 한 번도 고민해 본 적이 ‘바보’들이다.   내 말을 부정하려거든, 이번 파업이 왜 국민에게 득이 되었지, 또 당장이 아니라면 미래에 어떤 득이 되는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당신들의 요구는 너무나 구체적이나, 국민을 향한 목소리는 없거나 그저 말의 성찬처럼 느껴진다. 파업의 목표가 국민을 위한 것이었나? 파업을 통해 국민은 무얼 얻게 되었나? 노조 만드는 거 좋다. 그런데 노조가 국민에겐 어떤 득이 되는가? 이쯤은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까? 당신들의 숭고한(?) 행위를 '몽니'라고 보는 이유도 당신들의 그 좁은 시야와 외골수적 태도 때문이다.   의료는 당신들이 독점할 수 있는 '무엇'이 아니다. 당신들의 행동이 당신들에겐 너무 정당하나, 사람들에겐 치기어린 행동으로 보이는 까닭도, 타자에 대한 고려가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희망이 서운함을 넘어 절망으로 변해가고 있다. 더 늦기 전에 당신들의 한계를 깨닫게 되길 바란다.   ※ 본 기고문은 뉴스매거진2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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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07
  • [특별기고]재난을 부를 재난지원금
    보도에 따르면 오늘 재난 긴급지원금을 최종 결정할 모양입니다. 1,040억원을 노래방, PC방, 여행사 등에 현금이나 세제지원을 할 셈입니다. 부총리께서 핀셋지원이라고 하더니 정말로 ‘특정업만 선별’할 생각입니다. 아직 확정은 안 된 듯하니, 다음 3가지가 고려되었으면 합니다.          첫째, 이번 재난과 극복은 국민 모두의 몫입니다. 더와 덜이 없습니다. 당장 음식점, 학원, 커피전문점, 유통업 등 피해 업종을 따지자면 한이 없습니다. 여기에 피해업종에 종사하다 해고나 일시해고 혹은 무급휴직된 노동자는 어떻게 합니까? 보도대로라면 청와대에 국민청원이 빗발칠 것입니다. 재난지원금이 그야말로 재난을 지원할 것입니다. 그래서 국민 개개인에게 대인지원을 우선해야 합니다. 업종지원은 금융지원과 세제지원 등 간접지원으로 하면 될 일입니다.   둘째, 그래도 핀셋지원을 하려면 준비를 지나칠 정도로 철저히 하십시오. 정부는 산하연구기관과 행정자료가 매우 많이 있습니다. 지원을 하기 전에 지원대상과 지원규모를 꼼꼼히 점검하고 전달체계상의 허점이 없는지 철저히 점검하십시오. 정책당국인 청와대나 주무부처 대부분의 정부보고서와 같이 다소 형식적이고 막연한 검토로만은 절대 안됩니다. 수고롭겠지만, 장관이나 차관선에서 처음부터 치열하게 검토해야 합니다. 아마 그래도 부족할 겁니다. 지원의 수혜주체가 느끼는 피해와 효용은 공급주체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이 갭은 쉽사리 메워지지 않습니다. 더구나 지금대로라면 ‘비교’가 가능하기 때문에 그 주관적 격차는 더욱 커질 것입니다. 더구나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오천만개의 슈퍼컴퓨터는 오천만개의 핸드폰과 컴퓨터를 통하여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미 국민들에게는 초연결인공지능이 있는 셈이라서, 정부라 할지라도 그 성능을 당하기 어렵습니다.   셋째, 힘들고 애쓴 국민 모두에게 대결보다는 호소를 해야합니다. 스스로를 자제하며 찌는 듯한 여름날의 고통 속에서도 코로나를 이겨내는 것은 바로 국민이기 때문입니다. 돈! 나중에 또 벌어서 채우면 됩니다. 재정건전성! 그 또한 결국 국민이 낼 것이지, 관료나 정치가의 주머니에서 나오진 않습니다. 진심어린 호소와 따뜻한 마음이라면 국민들은 재난지원금 적은들 좀 더 못 참겠습니까?    ※ 본 기고문은 뉴스매거진2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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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04
  • [이승훈 교수의 생활 속의 수학⑤]바다에서 수평선 멀리 있는 배까지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바다에서 수평선까지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바다에서 저 멀리 끝없이 보이는 수평선을 바라보면 마음이 후련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참 좋다. 그러면서 수평선까지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하는 의문을 가져 본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출처: 실용수학, 경문사, 이승훈 수평선까지의 거리는 오른쪽 그림에서 선분 QT의 길이이다. 이때 선분 QT는 원(지구)의 접선이 되어 각QTO는 직각이다. 따라서 수평선까지의 거리는 직각삼각형 QTO에서 선분 QT의 길이를 구하면 된다. 이때, 직각삼각형은 피타고라스 정리로 잘 알려진 신기한 성질을 만족한다는 것을 이용하게 된다. 피타고라스 정리에 의하면, 직각삼각형의 세 변의 길이를 각각 a, b, c라고 하고, 가장 긴 변의 길이가 c 라고 하면 다음 등식이 성립한다. 선분 OT와 OP의 길이는 지구 반지름의 길이이고, 약 6400km이다. 선분 PQ는 사람의 눈높이이고, 약 1.6m라고 하자. 이제 피타고라스 정리를 이용하여 수평선까지의 거리를 구하면 다음과 같다.   따라서 수평선까지의 거리는 약 4.5km이다.   수평선 멀리 보이는 배까지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그러면 바닷가에서 수평선 멀리 보이는 배까지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수평선까지의 거리가 약 4.5km이니까 배까지의 거리도 4.5km일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바다에 사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약 10km라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바다에서 보면 4.5km보다 더 멀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출처: 실용수학, 경문사, 이승훈 왜 수학적으로 계산한 결과와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2배 이상의 큰 차이가 날까? 이 차이는 계산오차라고하기엔 너무 크다. 필자는 이 문제에 대하여 오랫동안 의문을 품고 있었는데, 마침내 의문을 해결했다. 수평선까지의 거리는 4.5km가 맞고, 배까지의 거리는 10km가 맞다. 왜 그러냐 하면, 수평선 멀리 보이는 배의 비밀을 알면 된다. 그 비밀이란 이렇다. 수평선 멀리 보이는 배는 수평선에 있는 배가 아니라 수평선 너머에 있는 배라는 것이다. 오른쪽 그림을 보면 수평선 너머에 있는 배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수평선 멀리 보는 배는 자세히 보면 배의 밑 부분이 덜 보이거나 없다. 이것과 같은 이유로 나타나는 현상이, 배가 수평선 멀리 사라질 때와 멀리서 가까이 올 때가 다르다는 것이다.   배가 수평선 멀리 사라질 때와 멀리서 가까이 올 때의 차이 배가 수평선 멀리 사라질 때의 모습과 멀리 있던 배가 서서히 가까이 다가올 때의 모습이 어떻게 다를까? 바다에서 멀리 사라지는 배의 모습을 보면 배의 아래 부분부터 조금씩 사라진다. 사람으로 치면 발이 안보이고, 그 다음에는 무릎까지 안보이고, 허리 위쪽 상반신만 보이다가 나중에선 머리만 보이고, 그리고는 완전히 사라지는 식이다. 멀리서 나타날 때는 그 반대의 순서로 머리부터 차례대로 보인다. 출처: 실용수학, 경문사, 이승훈 오른쪽 그림으로 보면 그 이유가 이해 될 것이다. 이런 현상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의 증거가 되기도 한다.   학교 수업시간에 배운 수학을 활용하면 일상생활 중의 궁금증을 많이 해결할 수 있다. 알고 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필요할 때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뒷받침되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 이 기사의 내용은 유튜브 채널 <생활 속의 수학>에서 자세한 설명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uk2XRLex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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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12
  • [칼럼]아! 수레여울(車灘川)
    최병수 연천문인협회 회장   1995년에 발행된 『향토사료집(연천문화원)』 「지명유래」편에는 수레여울에 대한 유래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수레여울(車灘, 수레울)  : 공굴다리 북쪽, 장진천에 있는 여울. 조선 개국 초 연천읍 현가리 도당골에 은거했던 고려 진사 이양소(李陽昭)를 만나기 위하여 연천으로 친행하던 태종의 어가(御駕)가 이 여울을 건너다 빠졌다하여 ‘수레 여울’로 불리게 되었다 한다.” 秋雨半晴 人半醉 가을비 멎으면서 반쪽  하늘 개었는데, 사람은 술기운에 반쯤 취했네. 暮雲初捲 月初生 저녁 구름 걷어지며 초저녁달이 떠오르네.위 칠언절구는  1800년대 만들어진 『연천현읍지(漣川縣邑誌)』(서울대 규장각 소장) 「총묘(塚墓)」편 ‘이양소 묘’에 기록된 내용으로, 태종 6년(1406) 연천을 방문한 태종이 고려 말 동문수학한 옛 친구 이양소(李楊昭)를 만나 술을 함께 마시며 주고받은 칠언절구(七言絶句)이다. 이 때 이양소를 만나기 위하여 거가를 타고 장진천(漳津川)을 건너다 여울에 빠지는데 이 여울이 바로 수레 여울(車灘)이다. 두 사람이 만난 이야기는 조선 영조 때 연천현감을 지낸 신유한(申維翰)의 「청천집(靑泉集)」, 정조 때 홍문관, 예문관 양관의 대제학을 지낸 홍양호(洪良浩, 1724~1802)의 문집인 이계집(耳溪集), 역시 정조 때 규장각 검서관을 역임한 포천 출신 성해응(成海應 1760~1839)의 연경재전집(硏經齋全集)에 조금씩 다르지만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되어있다. 이를 보더라도 두 사람의 이야기는 후세 사람들에게 널리 회자되고 있는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태종은 조선 건국 후 개경을 등지고 은둔했던 이양소가 거의 15년 만에 자신 앞에 나타나 준 것이 너무 기쁘고 반가웠다. 두 사람은 고려 우왕 8년(1382) 진사시험에 같이 합격한 사마동방(司馬同榜)이면서도 나이도 동갑(정미생. 1367년생)이었다. 곡산 청룡사와 성균관에서 함께 학문을 연마하다가 의기가 투합하면 개경의 기생집도 함께 다닐 정도로 막역한 사이였던 것이다. 그런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역성혁명의 주역으로 조선의 임금이 되고, 한 사람은 불사이군의 마음으로 산속으로 은둔했다. 태종은 다정했던 옛날을 생각하며 술을 가져오라고 해서 이양소에게 술을 내려주며 함께 마시며 이양소에게 연구(聯句)를 짓자고 제의한다. ‘추우반청(秋雨半晴)~’로 시작되는 태종의 연구(聯句)는 새로운 왕조에 하루빨리 동참하라는 의미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양소의 대구(對句), ‘모운초권(暮雲初捲)~ ’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뜻으로 생각되는데,(필자의 짧은 소견임) 이양소는 대구의 마지막 연(聯) ‘월초생(月初生)’을 읊으며 태종의 제의를 완곡하게 거절한다. 월초생은 송도(松都)의 유명한 가기(歌妓:노래를 잘 부르는 기생)로 이방원이 젊어서부터 가까이한 행희(幸姬:마음드는 여자, 군주의 첩) 그러나 태종이 권력을 잡은 후 제대로 돌아보지 않았는지 월초생은 일찍 죽었다. 이양소가 대구(帶鉤)에서 월초생을 언급하자, 태종은 겸연쩍게 웃으면서 이양소의 손을 잡고 거가에 오를 것을 명한다. 이양소가 극구 사양하며 오르지 않자, 태종은 그 자리에서 이양소에게 곡산부사직을 제수한다. 이양소는 엎드려 절하며 사례를 올리고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헤어져 태종은 한양으로, 이양소는 도당골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양소는 곡산부사로 부임한 지 3일 만에 소를 거꾸로 타고 연천 도당골(현가리)로 돌아와 다시는 세상 밖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수레여울(車灘)은 우정, 충절의 의미를 생각게 하는 교훈적인 이야기가 있는 역사의 현장이며, 수레여울에서부터 전곡읍 삼형제 바위 앞까지 이어지는 차탄천은 지난 7일 유네스코로부터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 받은 한탄강의 지천으로서 빼어난 명소이다. 이전에는 차탄천 계곡이 험난하여 인간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아 비경(祕境)으로 남아 있었으나, 2015년부터 ‘차탄천 에움길’이라는 미명아래 지속적인 파괴가 이루어져 지금은 본래의 모습이 거의 사라졌다. 근래에는 오폐수차집관로를 설치한다고 굴삭기와 덤프트럭을 동원하여 엄청나게 파괴하더니, 지금은 관광객을 위한 시설물을 설치한다고 대형 굴삭기와  20톤이 넘는 카고 트럭이 드나들며 세계 어느 곳에 가서도 볼 수 없는 경관을 간단없이 망가뜨리고 있다. 아울러 일반인의 무단출입을 방치함으로써, 야영, 낚시꾼들의 쓰레기가 마구 버려져 있어 과연 이 곳이 지질명소인가 개탄의 소리가 절로 난다. 차탄천 지질명소의 많은 부분이 파괴된 공사현장에서 엄청난 중장비의 굉음을 들으면서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공사를 하는 것인지?”, 연천군에 목 놓아 소리쳐 묻고 싶다.  최병수 <연천문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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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0-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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