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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현무암 주상절리의 교향곡, ‘은대리주상절리협곡’을 재조명한다
    은대리주상절리협곡 ⓒ뉴스매거진21   세계적인 관광지 도약 기회.. 차분하게 내실을 기해야 ‘은대리주상절리협곡’, 자연이 베푸는 최고의 선물이자 숨겨진 최고의 지질명소 차탄천 에움길, 차탄천이 가진 특수한 자연환경 반영 필요        재인폭포 ⓒ뉴스매거진21   한탄강 지질공원,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최종 승인 세계적인 관광지 도약 기회.. 차분하게 내실을 기해야 지난 7월 7일 한탄강 지질공원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최종 승인되었다. 국내에서 제주도(2010년), 경북 청송(2017년), 광주·전남 무등산(2018년)에 이어 4번째다. 한탄강 지질공원은 한탄강이 흐르는 강원도 철원군, 경기도 포천시와 연천군 일대에 여의도 면적의 약400배(1천165.61㎢)에 달한다. 주상절리, 베개용암, 백의리층 등 내륙에서는 보기 어려운 화산지형이 잘 보존돼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고 경관이 무척 빼어난 지역으로 총 26곳의 지질문화명소들이 등재됐다. 그 중 연천의 지질명소 10개소는 재인폭포, 백의리층, 좌상바위, 차탄천 주상절리, 아우라지 베개용암, 동막골 응회암, 은대리 판상절리와 습곡구조, 전곡리 유적 토층, 동이리 주상절리, 당포성이 있다. 현재 전 세계 147개소(41개국)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받았으며, 이번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인증은 세계적에서 보존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한탄강 일대가 세계적인 관광지로 도약할 절호의 기회를 맞게 되었다. 이럴 때일수록 차분하게 한탄강 일대의 미적 요소, 지질학적 특성 등 문화·교육 콘텐츠를 잘 정리하고, 지역민 심화교육을 통해 지역 자긍심을 높이고, 주차시설과 안내판 등 관광인프라 구축 등 내실있게 준비해야 한다.   은대리협곡은 한탄강에서 역류한 용암을 차탄천이 흘러서 만들었다 ‘은대리주상절리협곡’, 자연이 베푸는 최고의 선물이자 숨겨진 최고의 지질명소 차탄천은 추가령구조곡을 따라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36.8km에 이르는 지방하천이다. 철원 금학산 북쪽 계곡에서 시작해 연천군 신탄리, 대광리 그리고 연천읍을 거쳐 전곡읍 은대리에서 한탄강과 만나는 연천 주민과 희노애락을 함께 겪어 온 가족처럼 친근한 하천이다. 3번 국도 서쪽에 펼쳐진 은대평야(옛 지명: 가사평) 바로 옆 20여 미터 수직절벽의 은대리협곡엔 차탄천이 흐르고 있다.     한탄강지질공원 홈페이지에 지질트레일 코스. 주황색 원은 은대리주상절리협곡 ⓒ뉴스매거진21   은대리주상절리협곡은 용소와 해동양수장을 포함해 은대리물거미서식지 근처 은대리 판상절리(수평절리) 아래 500미터까지 4㎞에 이르는 구간이다. 55만년전부터 12만년 사이 용암이 3차례에 걸쳐 한탄강에서 차탄천으로 역류했고, 차탄천이 흘러 내리면서 만든 현무암 수직주상절리와 부채꼴주상절리, 판상절리(수평절리)가 병풍처럼 펼쳐지는 태고의 신비가 가득한 이 곳은 연천 주민들만 알고 있는 숨겨진 지질명소다. 은대리협곡은 한탄강과 임진강이 만들어 낸 협곡과는 다르다. 연천을 북에서 남으로 관통하는 지방하천이 만든 협곡이라 협곡 폭이 좁은 것이 특징이다. 은대리협곡은 협곡 폭이 좁기 때문에 협곡 위에서 협곡 안의 주상절리가 잘 보이지 않아 한탄강처럼 협곡 위로 트레킹길을 만들 수 없다.          차탄천 용소 ⓒ뉴스매거진21       은대리 수직주상절리 ⓒ뉴스매거진21   은대리 부채꼴주상절리 ⓒ뉴스매거진21    은대리 사선방향 주상절리 ⓒ뉴스매거진21   은대리 판상절리 ⓒ뉴스매거진21   은대리 습곡구조 ⓒ뉴스매거진21    협곡 아래로 내려가야만 주상절리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협곡 아래서 20여미터 높이의 수직절벽에 펼쳐진 주상절리를 보노라면 나 자신이 한없이 작게 느껴지고 자연의 힘, 알 수 없는 자연이 만들어낸 추상화의 위력 앞에 겸허한 마음과 공경심을 갖게 된다. 천천히 감상하면서 온전하게 걷는 일 또한 만만치 않다. 차탄천이 좌우로 굽이굽이 흐르는 바람에 여러 개의 돌다리를 건너야만 은대리협곡의 주상절리 벽화 모두를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름 장마나 홍수로 급물살이 몰아치면 사고가 잇따르는 위험지역이기도 하다. 또 겨울철 얼음이 얼면 주상절리를 가까이에서 감상하는 일도 위험이 따른다. 한탄강 일대 현무암 주상절리 명소가 많이 있지만, 은대리협곡이야말로 은대평야가 숨겨놓은 태고의 신비가 가득한 현무암 지질명소 중에 단연 최고다. 수직주상절리, 부채꼴주상절리, 판상절리 그 외에 습곡구조 등 사시사철 시시각각 변화무쌍하게 변신하는 현무암 주상절리의 모든 것을 4㎞에 이르는 협곡 안을 2시간정도 걸으며 감상한다는 것은 최고의 축복이다. 그렇지만 은대리협곡을 품고 있는 자연환경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녹녹치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차탄천 에움길 정비사업, 돌다리가 뭐길래.. 여름철에도 공사 중, 흙탕물 흐르는 차탄천 차탄천 에움길 정비사업은 국가지질공원 지오트레일의 일환으로 연천군이 2018년 1월부터 올해 12월까지 차탄교에서 은대리성까지 9.9km에 30억 사업비를 투입해 주차장 1개소, 징검다리 6개소, 진입로 포장 등을 시행하고 있다. 당초 작년 12월 공사완료할 계획이었으나 차탄천 차집관로 공사구간과 중복되는 바람에 공사계획이 연기되어 작년 하반기 시작해 올해 8월 공사완료할 예정이다. 차탄천 차집관로 교체공사는 차탄천 9.28km에 2016년 6월부터 작년 6월까지 만 3년에 걸쳐 약145억원을 투입한 사업이었다.      불을 피웠던 흔적이 그대로 있다 ⓒ뉴스매거진21     굴삭기 작업을 하면서 훼손된 흔적이다 ⓒ뉴스매거진21    무거운 공사자재를 아무 생각없이 현무암지대에 쌓아 두었다 ⓒ뉴스매거진21    현무암 역시 풍화되거나 쉽게 떨어지기 때문에 자재 운반이나 보관은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뉴스매거진21   커다란 화강암 돌다리를 만들기 위해 바닥을 파헤쳐 콘크리트 타설까지 하고 있다. ⓒ뉴스매거진21      해동양수장 바로 아래에서도 돌다리를 놓는 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매거진21     청정계곡을 만들어도 충분치 않을텐데 열심히 흙탕물을 만들고 있다 ⓒ뉴스매거진21    용소 입구에 화장실과 쉼터가 있으나 화장실 관리가 전혀 안돼 도저히 사용할 수 없는 상태이다. ⓒ뉴스매거진21    용소 맞은편 수풀에 쓰레기가 잔뜩 있다 ⓒ뉴스매거진21   지난 5일 일요일 오후 에움길 정비사업 현장을 점검했다. 낚시하거나 캠핑객들이 버린 쓰레기와 불태운 흔적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고, 공사하느라 굴삭기가 현무암절리를 훼손한 흔적, 화강암 돌과 공사자재들을 협곡 현무암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려놓는 바람에 현무암 계곡 일부가 훼손되기도 했다. 자연스런 돌다리 대신 막대한 세금을 들여 굳이 협곡 현무암 바닥을 파헤쳐서 커다란 화강암 돌다리를 놓아야 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지난 14일 화요일엔 해동양수장과 용소 일대를 둘러 보았다. 용소에 설치된 화장실은 관리가 되지 않아 도저히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또 용소 맞은편 풀 숲에 쓰레기가 방치되어 있었다. 이것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최종승인을 기뻐하고 있는 우리들의 부끄러운 현주소이다.   차탄천만이 가진 특수한 자연환경 반영 필요 기본에 충실한 조치부터 시작해야.. 차탄천 에움길 9.9km 조성은 좁은 협곡이라는 차탄천 자연환경이 가진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차탄천 에움길을 3개 코스로 쪼개는 것도 좋겠다. 짧은 코스로 분리하면 홍수가 나서 돌다리를 사용할 수 없게 되더라도 출입거점 중심으로 이동하면 큰 불편이 없을거라고 본다. 예를 들면, 차탄교에서 용소까지 1코스, 용소에서 은대리 판상절리까지 2코스(일명 ‘은대리주상절리협곡’), 은대리 판상절리에서 은대리성까지 3코스로 말이다. 이렇게 3코스로 나누면, 차탄교, 용소, 은대리 판상절리, 은대리성 4곳이 출입거점이 된다. 이 출입거점 4곳에 주차시설을 잘 만들어 접근성을 높이면 좋겠다. 이문원 강원대 명예교수는 “대부분 차로 이동하기 때문에 출입거점에 주차장이 없으면 한번은 오겠지만 다시는 찾지 않게 된다”며,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승인을 계기로 주차시설 조성 등 인프라 구축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수한 자연환경에 맞는 맞춤형 정비사업과 함께 차량출입 통제, 쓰레기 수거 및 화장실 청소 등 기본에 충실한 조치가 시급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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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17
  • 양주 회암사지, 문화재청 세계유산 연구지원 사업 공모 선정
      양주시(시장 이성호)는 양주 회암사지가 문화재청에서 실시한 ‘세계유산 잠정목록 연구지원 사업’ 공모에 선정됐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에서 처음 실시한 이번 공모사업은 경쟁력 있는 신규 잠정목록을 발굴해 연구비 지원과 컨설팅 등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올해 전국에서 총 4개 유산을 선정했다.   양주 회암사지는 고려 14세기에 중창되어 조선 17세기 전반까지 운영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왕실사찰 유적으로 당시 불교, 사상, 건축, 문화 등을 잘 보여주고 있다. 회암사지는 폐사 이후 최근 발굴이 이루어지기까지 당시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등 13~14세기 동아시아에서 유행한 선종사원의 전형적인 모습을 고고유적으로 증명하는 귀중한 사례이다.   양주시는 1997년부터 2016년까지 약 20년에 걸친 발굴조사와 함께 회암사지박물관 건립, 유적정비 등 회암사지 종합정비사업을 실시했으며, 회암사지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체계적 보존‧관리하기 위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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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주
    • 문화관광
    2020-07-15
  • 양주시, 회암사지 최북단 ‘회암사지부도탑’ 국가문화재(보물) 지정 추진
        양주시(시장 이성호)는 양주 회암사지(사적128호) 최북단에 위치한 ‘회암사지부도탑’의 국가문화재(보물) 지정을 추진한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2호로 지정되어 있는 회암사지부도탑은 조선시대 일반적인 불탑과 차별되는 형태를 가진 새로운 불탑 양식의 대표적인 사례로, 유적 8단지에 위치한 정청지나 동·서방장지 등 건물지와 함께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특히 구름에 휩싸인 용, 기린 등 생동감있고 뛰어난 조각과 치석수법은 조선시대 왕실발원 석조물과 양식적으로 친연성을 보이고 있으며, 많은 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석가모니 진신사리가 봉안되었던 불탑으로 여겨지고 있다.     아울러,『조선왕조실록』 등에 따르면 1464년(세조 10) 4월 효령대군(孝寧大君) 이보(李補, 1396~1486)는 회암사 동쪽 언덕에 석종(石鐘)을 건립하고 석가여래(釋迦如來)의 사리(舍利)를 안치하며, 법회를 열어 『원각경(圓覺經)』을 강의하였다고 한다. 또, 이날 저녁 여래가 공중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사리가 분신(分身)하여 수백여 개가 되는 등의 기이한 현상이 나타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 관계자는 “각종 기록과 연구 결과 등을 종합할 때 회암사지부도탑은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등재돼 보호할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며 “앞으로 회암사지부도탑에 대한 보존관리와 활용계획을 수립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양주 회암사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을 통해 회암사지의 세계 유산적 가치를 증명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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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주
    • 문화관광
    2020-07-04
  • [photo] 붓꽃의 '생로병사'
       국사봉 바로 아래 헬기장에서 만난 붓꽃들 ⓒ강정환
    • 역사관광
    • 자연생태
    2020-05-23
  • [photo] 태극기가 바람에..
          국사봉 태극기와 전곡 전경 ⓒ강정환
    • 역사관광
    • 문화유적
    2020-05-23
  • 포천시 한탄강지질공원센터 재개관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임시 휴관 중인 한탄강지질공원센터(포천시 영북면 비둘기낭길 55)가 이달 8일 재개관했다. 한탄강지질공원센터는 지질공원을 주제로 한 국내 최초의 박물관으로 지난해 4월 개관하여 올해 3월에 공립박물관으로 정식 등록되었다.   센터는 전시관 외에 4D영상관, 지질생태체험관, 카페테리아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체험프로그램으로는 지질케이크만들기, 현무암 팔찌만들기, 현무암 화분만들기 등을 운영하고 있다.   생활방역체제에 따른 감염병 예방을 위해 입장시 반드시 마스크 착용을 해야 하며, 발열체크와 손소독 실시 후 입장이 가능하다. 또한, 동시 입장가능 인원은 최대 40명, 관람시간은 1시간으로 제한한다.   원활한 관람을 위해 사전예약을 권장하며,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http://museum.hantangeopark.kr/) 또는 한탄강지질공원센터(☎031-538-3030)에서 알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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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천
    • 생태환경
    2020-05-10
  • 포천시, '하늘아래 치유의 숲' 이달 6일부터 재개장
    하늘아래 치유의 숲 ⓒ포천시   포천시는 이달 6일부터 '하늘아래 치유의 숲'을 재개장한다고 밝혔다. 포천시는 지난 2월 23일부터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정부 정책에 따라 코로나19 진정시까지 치유의 숲을 휴장했었다.    '포천 하늘아래 치유의 숲'은 2018년 4월 정식 개장후 경기북부 대표적 산림휴양명소로 각광받아 왔다. 최근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와 동시에 전국 산림휴양시설에 대해 입장을 허용함에 따라, 포천시는 이달 6일부터 치유의 숲을 재개장했다. 코로나19로 인해 가족들이 받았던 스트레스를 해소할겸 수도권에 위치한 이곳 치유의 숲을 주말에 가족 나들이하는 것도 좋겠다.     하늘아래 치유의 숲에 조성된 숲속 족욕장, 세족장, 밧줄놀이 ⓒ포천시 홈페이지   포천시 신북면 금동리 산38번지 일원에 위치한 '하늘아래 치유의 숲'은 숲속의 집, 풍욕장, 힐링테크, 숲속 족욕장, 야외 세족장, 숲 밧줄놀이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50~70년된 잣나무 숲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고 치톤피드로 가득한 산림욕을 즐기면서 정서적 안정감을 찾을 수 있는 힐링여행의 최적지이다.     포천시 생태공원과 산림휴양팀 양영언팀장은  “코로나19로 지친 시민들이 치유의 숲에서 몸과 마음을 회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치유의 숲을 찾는 손님들이 보다 안전하고 깨끗하게 휴식을 즐길 수 있도록 철저하게 방역하는 등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 나가겠다”고 말했다.   포천 하늘아래 치유의 숲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금동리 산38번지 일원 문의처  ☏ 031-538-3340, 3337   운영시간 : 오전9시 ~ 오후6시 운영요일 : 주중 및 휴일(매주 월요일 휴장) 입장료 : 개인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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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천
    • 생태환경
    2020-05-10
  • 경기도, 기념물·문화재자료 등 지정문화재 정기조사 실시
      경기도와 경기문화재연구원은 기념물, 문화재자료 등 도 지정문화재의 일반현황, 입지현황, 관리현황 등에 관한 정기조사를 실시한다고 1일 밝혔다. 경기도 지정문화재 제도는 도내 문화재 중에서 ‘역사적ㆍ예술적ㆍ학술적 또는 경관적 가치가 큰’ 대상을 기념물, 유․무형문화재, 문화재자료로 지정해 보호하는 제도다.   경기도는 앞서 2015년 국내 최초로 전문기관인 경기문화재연구원을 통한 정기조사를 실시했으며, 이번 조사는 이후 추가 지정된 문화재와 변화 사항을 포함하여 시행된다. 조사대상은 31개 시·군 소재 기념물 183건, 문화재자료 18건 등 총 201건의 지정문화재로 올해 말까지 조사가 이뤄진다.   현장조사는 관련 전문가들을 점검위원으로 구성해 3월부터 7월까지 실시되며 보존관리현황 및 변화, 노후도, 훼손도, 방재설비 등 관리 실태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와 함께 문화재 및 보호구역에 대한 적정성 등에 대한 검토가 이뤄진다. 조사결과는 시·군에 통보해 문화재 보호관리 방안 수립과 보수정비 우선순위 결정, 문화재 소방 및 안전관리 실태에 대한 문제점 개선 등에 활용되며 필요한 사업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근거로 사용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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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정
    2020-04-07
  •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 특별전시 연계 학술세미나 개최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은 (사)국제온돌학회와 함께 오는 2월 1일 회암사지박물관 1층 강당에서 <온돌 : 회암사의 겨울나기> 특별전시 연계 학술세미나를 개최한다.   학술세미나는 국제온돌학회 소속 온돌건축분야 전문가의 주제발표를 통해, 사적 128호 양주 회암사지의 온돌과 우리나라 온돌문화의 가치를 재조명할 예정이다.     발표자는 중국 심양건축대학교 건축학부 교수이자 국제온돌학회장인 김준봉 교수를 비롯해 목포대학교 김지민 교수, 전남대학교 천득염 교수, 전통온돌기술자 신용선 ㈜구들 대표이사 등 우리나라 온돌건축분야의 최정예 연구자들이 참여한다. 또 국제온돌학회 회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온돌의 우수성과 회암사지 온돌의 가치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도 마련할 예정이다.   우리나라 고유 민속문화인 온돌에 관심 있는 사람은 누구나 들을 수 있다. 박물관 관계자는 “특별전시 종료를 앞두고 회암사지 온돌의 가치를 조명하는 이번 학술세미나에 시민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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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주
    • 문화관광
    2020-01-29
  • 임진강 평화문화권 38선 역사체험길 기본 및 실시설계 용역
      총사업비 84억 중 국비 37억 원 및 특조금 8억 원 지원    포천시는 지난 12일 포천시청 시정회의실에서 박윤국 시장 및 포천시의회 의원들과 교수 등 내·외부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임진강 평화문화권 38선 역사체험길 기본 및 실시설계용역’ 용역보고회를 가졌다.       38선 역사체험길 조성사업은 2014년 10월 ‘임진강 평화문화권 지원사업’으로 선정됨에 따라 창수면 오가리, 영중면 영송리, 일동면 수입리 일원에 총 17km에 폭 2~3m, 총사업비 84억 중 국비 37억 원 및 특조금 8억 원을 지원받아 진행되는 사업이다.      사업은 남북이 38선으로 분단된 역사적 사실을 재발견하고, 영평천 일대를 자연과 예술이 이루어진 공간으로 재탄생시켜 남북경협 거점도시 포천의 역사체험 문화브랜드로 창조하고자 추진된다.       포천시는 최근 구리~포천 고속도로 개통과 전철 7호선 연장사업 등 교통접근성 확대에 발맞추어 38선 영중면 일대의 군사 낙후지역의 이미지를 벗고 관광문화의 공간으로 주요 관광 체험시설로 자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용역보고회에서는 2016년 12월 실시설계용역을 발주하여 관련부서의 주요 사전협의를 완료하고 38선 역사체험길 조성사업의 기본계획(안)에 대해 지역 현안과 문제에 대해 도의원 및 시의원, 설계 전문위원과 관련부서장 등 내·외부 위원들이 참석해 많은 질의와 의견을 나눴다.       박윤국 시장은 “이번 용역보고회가 우리 시의 체험공간 확충뿐만 아니라 남북경협 거점도시 포천의 청사진이 될 수 있는 초석이 될 것이다. 애정과 관심으로 참석해주시고 소중한 의견을 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포천시는 이번 용역보고회에서 나온 의견과 건의사항을 토대로 가급적 빠른 시일 내 최종보고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포천시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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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25
  • [역사기행]청고(淸高)한 학(學)의 모습 '미수(眉叟) 허 목'
      “세 칸의 띳집이 숲속 그늘에 있었는데 넓은 뜨락 한 모퉁이 뾰족한 돌무더기를 모아 금강산 모습을 만들어 놓았다. 바위에는 이끼 무늬가 어룽대고 그런 사이에 전서(篆書) 글씨를 새겨 넣으니 제법 예스러운 모습으로 보였다. 방안에는 쓸쓸하게 다른 물건은 없었고, 더부룩한 눈썹에 성긴 수염은 청고(淸高)한 골상(骨相)이 마치 깡마른 학(鶴)의 모습 같았다.”     미수(眉叟) 허목(許穆)의 한 세대 이상 후배이던 간재(艮齋) 최규서(崔奎瑞)1) 는 아버지(崔碩英)가 연천현감으로 근무하던 1665년(현종 6년) 16살의 나이로 당시 71세의 허목을 찾아가서 만났는데 미수의 생전 모습과 사후의 유상(遺像)으로 전하는 모습을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었는지 대단한 관찰력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당시 허목은 3년 전에 삼척부사직을 사임하고 5대조 허훈(許薰)을 비롯한 선조들의 묘소가 있는 연천군 왕징면 강서리로 낙향하여 독서와 저술에 힘을 쓰며 십청원(十淸園)과 괴석원(怪石園)을 만들어 도가적인 삶을 살며, ‘청고(淸高)한 학의 모습’으로 평생을 살다가 간 미수 허목.    허목은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1595년(선조 28) 한양의 창선방(彰善坊)2)에서 태어나서 68세에 선조들의 고향인 연천에 정착할 때까지 간단치 않은 삶을 살았다.   유년시절은 7년 전쟁, 임진왜란의 와중이었고, 15세 부터는 부친의 임지를 따라 20년 가까이 여러 곳을 전전했는가 하면 한창 일할 나이인 32살 때에는 인조(仁祖)로부터 정거(停擧)3)를 당하여 좌절을 겪는데 후에 벌(罰)이 풀렸음에도 과거를 보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호란(胡亂)을 겪으며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1646년(인조 24) 선영을 중심으로 형성된 향리인 경기도 연천군 왕징면 강서리의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듬해 어머니가 의령에서 돌아가시자 연천의 선산에 장례를 치르고 3년 후, 56세에 비로소 정릉참봉에 제수되었으나 1개월 만에 사임하고, 내시교관, 조지서 별좌, 공조좌랑, 용궁현감, 지평 등 매년 새로운 벼슬에 제수되고 바로 사임하고 하는 일이 10년 가까이 반복된다. 허목은 왜 그렇게 관직을 맡지 않으려고 했을까? 아마 이것은 증조부 때부터 시작된 불행에 연유한 때문일 것이다.     증조부 허자(許磁;1496~1551)는 문정왕후 시절 문과에 합격하여 박사ㆍ수찬을 거친 후 사가독서(賜暇讀書)4)하여 교리ㆍ응교ㆍ검상ㆍ전환 등을 역임한 뒤 이조정랑에 오르는 등 순탄한 관리생활을 이어 나갔다. 명종이 즉위한 이후 호조판서를 거쳐 대사헌이 되었을 때, 윤원형(尹元衡), 이기(李芑) 등과 함께 소윤(小尹)으로서 대윤(大尹) 윤임(尹任)의 제거에 가담, 위사공신(衛社功臣) 1등으로 양천군(陽川君)에 봉해졌으며 벼슬이 좌찬성(종1품)의 자리에 까지 오르는 등 영화를 누렸으나 이기(李芑) 등 과 대립하면서 그들의 미움을 받아 함경남도 홍원으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어릴 때부터 학문을 즐기고 박람강기(博覽强記)5)하여 심성이 높고 깨끗하여 이달(利達)6)에 마음을 두지 않았던 아들 허강(許橿:허목의 조부)은 아버지가 이기(李芑)의 모함으로 홍원으로 귀양 가는 것을 보고 벼슬을 단념하였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 3년 동안 죽을 먹으며 여막살이를 하는 등 매우 슬퍼하였다. 그 행동거지가 바르고 곧아서 여러 차례 조정으로부터 부름이 있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40년간 강호(江湖)를 방랑하면서 옛사람의 책으로 스스로 즐거움을 찾고 다른 사람과 교유를 사절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황해도 토산에서 피난하던 중 그곳에서 유명(幽明)을 달리했다.   허목의 아버지 허교(許喬)는 이런 배경에서 성장하여 난중(亂中)에 아버지마저 돌아가시니 25세의 나이에 가장으로 가족을 부양해야하는 책임감으로 종9품 군자감 참봉부터 시작하여 여러 미관말직을 거쳐 25년 만에 종6품 거창현감의 자리에 올랐고, 포천현감을 마지막으로 65세로 임지에서 생을 마감한다.    약 40년 동안의 벼슬살이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평소 아들이 벼슬길에 나가는 것을 바라지 않았을까. 평소에 아버지가 벼슬길에 나가는 것을 바라지 않고, 32세 때 자신이 옳다고 행한 일에 대하여 인조(仁祖)가 글공부하는 선비에게 가장 치명적인 벌(罰)인 정거(停擧)의 조치가 내려짐으로서 관직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그리고 조부(祖父)처럼 전국을 유랑하며 스승을 찾고, 글공부에 매달렸던 것이다.      1650년(효종 1) 정월 56세의 나이로 비로소 추천(推薦)으로서 정릉 참봉(靖陵參奉)에 제수되자 그의 어머니가 "선인께서 아들이 벼슬길에 나가는 것을 바라지는 않았으나 굳이 말리지는 않겠다고" 하자 그는 수긍하고 관직에 나갔으나 1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1651년(효종 2) 10월 내시교관(內侍敎官)으로 임명되었다.  1652년 조지서(造紙署)  사지(司紙: 정육품 조지서 우두머리 )에 제수되어 상경하였으나 그해 6월에 공조좌랑(工曹佐郞)에 제수되자 사직하고 내려가 부임하지 않았다. 벼슬을 제수하면 바로 사직하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다가 63세인 효종 8년(1657) 지평(持平: 사헌부 정오품 관직)에 임명되었다가 1년 만에 장령으로 옮겼고, 현종 즉위하여 사헌부 장령(掌令: 정사품 관직)으로 예(禮)를 간쟁(諫爭)하다가 삼척부사로 좌천되었다. 삼척부사의 자리도 노론의 무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여 60개월(5년)의 임기도중인 2년 만에 자리에서 물러난다. 허목이 내직(內職)7)이던 외직(外職: 지방관) 이던 임금이 제수하는 직책에 오래 있지 못하고 거듭 사직을 하게 되는 것도 선조(先祖)들의 순탄치 못했던 관직 생활과 아버지의 유훈(遺訓) 등이 큰 영향을 미쳤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점차 깊어가는 당쟁의 폐해로 조정의 말단 하리(下吏)까지 노론의 무리로 가득 찬 상황에서 관리로서 자신의 신념과 의지(意志)를 펼치기가 쉽지 않았을 것으로 사료된다.    이미 효종 시절부터 조정 내 요직을 차지하고 있던 서인들은, 현종 시절 사헌부 장령의 위치에 있던 허목이 제1차 예송논쟁에 밀려 삼척부사로 좌천되어서 10 여년을 연천에서 저술과 독서에만 몰두하다가 숙종의 부름을 받고 대사헌에 임명되어 숙종의 신하로서 궁궐에 출입할 당시의 기록인 《숙종실록(1년~5년)》을 살펴보면 사관들이 편파적이고 주관적으로 사초를 작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록의 주된 내용은 매일 매일 조정에서 일어난 일을 가감 없이 객관적으로 기록한 기사여야 하는데, 당시의 기사는 자신의 주장을 담은 사론(史論)과 같은 논조로 사초를 작성하였고, 사론(史論)이라는 말이 부끄러울 정도로 중상모략을 담아 무차별 인신공격을 가하고 있어 보기가 민망할 정도이다.    그러한 내용이 상당히 많지만 대표적인 내용 하나만 살펴보자. 허목이 소(疎)를 올려 아뢰기를  “전에 직강(直講)을 지낸 이태서(李台瑞)는 문사(文詞)로 이름이 나서 지금 세상에는 이만한 사람을 볼 수가 없습니다. (중략) .........허목은 을사년559) 간신 허자(許磁)의 손자로서 그의 어미는 시인(詩人) 임제(林悌)의 딸이었다...............(중략) ........... 허목은 밖으로는 대범하고 명랑한 것 같지마는 속은 실지로 간사하였으며, 눈썹의 길이가 거의 한 치나 되었기에 스스로 미수(眉叟)라고 호를 지었다. 그러나 눈초리가 굽고 눈동자가 분명치 못하였다.  .......... (중략) .......... 허목은 오로지 보복(報復)을 일삼아서 비록 늙고 혼미(昏迷)하여 일을 처리하는 것이 그릇되고 잘못됨이 많지마는, 송시열을 공격하는 일에 이르러서는 앞장섰고, 기관(機關)이 교묘하고 주밀하였다. ...... (하략) ......                                  (숙종 3권, 1년(1675 을묘) 4월 10일 기사)    이날의 기사는 숙종이 보위에 오른 지 채 1년도 안 되는 숙종 1년 4월 10일의 기사로, 허목이 관직에 추천하여 직강(直講)의 자리에 임명된 이태서(李台瑞)가 서인들의 집요한 공격을 받아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자, 이 일에 책임을 느낀 허목이 사직을 청하였으나 숙종이 허락하지 않는 장면이다. 그런데 그 기사 말미에 ‘사신은 논한다’는 사론(史論)의 전제(前提)도 없이 허황되고 근거 없는 장문(長文)으로 허목을 극렬하게 비방하고 있는 것이다.    선조(宣祖) 때부터 심화되기 시작한 파당(派黨)의 폐해는 이미 온 조정(朝廷)을 덮어 말단 하리(下吏)로 부터 사관(史官)에 이르기 까지 요소요소에 포진한 파당(西人)의 무리가 임금의 부름을 받아 과거시험을 보지 않고도 유일하게 삼공(三公)의 지위에 오른 허목을 극렬하게 깎아내리고 있다.   미수 허목의 학문적인 연원(淵源)8)은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힌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의 수제자인 허목은 영남학파의 학문적 전통을 근기(近畿)지역으로 옮겨 받아 고학(古學)과 고문(古文)이라는 고경(古經)으로 방향을 틀어 ‘근기(近畿)학파’를 열었고, 조선 후기 3대 학자라는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 성호(星湖) 이익(李瀷),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이라는 걸출한 후학들이 뒤를 이어 학문적 연원을 이룩했다.    허목은 자신의 학문과 사상이 담긴 문집을 ‘기언(記言)’이라고 했다. 당시 모두가 ‘문집(文集)’이라 했건만, 선생 자신이 ‘기언(記言)’이라고 정했다. 굳이 문집이라고 하지 않고 기언이라고 한 것은 ‘기언(記言)’의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허목은 고서(古書)를 무척 좋아했고 늙어서도 게으르지 않았다(穆篤好古書 老而不怠)” 라는 첫 글귀가 선생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웅변하고 있다. 모두가 성리학에 열중하여 송나라 주자(朱子) 이후의 학문에 경도(傾倒) 되었을 때 선생은 옛글, 최소한 이전의 공맹(孔孟)의 학문만을 좋아해서 늙도록 게으르지 않게 그런 부분만 연구했다는 것을 분명하게 선언한 것이다. 미수의 상고정신(尙古情神), 즉 옛 것을 숭상하는 마음은 흔히 말하는 복고주의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일찍이 이우성(李佑成) 교수(1925~2017.한문학자, 국사학자)는 밝혔다.   “고문(古文). 고서(古書)의 ‘고(古)’를 숭상하는 미수의 상고정신은 중세에 대한 부정이며 중세에 대한 부정은 동시에 관념화된 당시의 성리학-주자학 정신 풍토의 부정이다. 주자학적 권위주의가 우리나라에서 정점에 도달한 17세기 당시에 그 권위의 구축에 일생의 정력을 바친 송시열과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이 교수의 주장처럼 주자학적 권위주의를 탈피하려는 변혁의 발단이 바로 미수(眉叟)에게서 나왔음을 알게 된다. 우리가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던 1, 2, 3차로 이어지는 예송논쟁은 왕권과 신권의 충돌, 또는 단순한 당쟁의 산물이 아니라 바로 이런 학문적 뒷받침 속에서 허목과 송시열의 대결이라는 역사적 경쟁은 불가피했던 것으로 보인다.    숙종 원년(1675) 80세의 나이로 부름을 맞아 1년 동안 5번이나 관직을 옮겨 삼공(三公)에 이르니 81세였다. 14살의 소년왕 숙종은 팔순이 넘은 노신을 극진히 예우하였다. 그러나 경신환국(庚申換局)과 기사환국(己巳換局)과 같이 여러 차례 정국을 손바닥 뒤집듯 하여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는 많은 신하들을 희생시켰다. 허목은 85세에 벼슬을 내놓고 낙향하였다가 이듬해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9)으로 조정에서 남인들이 쫓겨나갈 적에 삭출(削黜)10)을 당하였다. 이후로 다시는 부름을 받지 못하여 88세 되던 해 4월 병이 나서 조석으로 배알하던 선조의 묘를 가지 못하였다. 이때부터 그동안 부탁받은 남의 책 서문, 가장(家狀), 묘문(墓文)과 전서(篆書)를 써달라는 종이를 봉해 돌려주거나 하면서 주변을 정리하며 서제(庶弟)인 달(達)을 시켜 손톱을 깎고 머리를 빗기도록 하였다. 4월 27일 갑진일에 문하의 여러 제자들이 밖에서 들어와 문안을 여쭙자     “제군(諸君)들 왔는가, 모름지기 잘 있게.”   하고서 조금 있다가 편안히 운명했다. 이때가 4월 27일(甲辰) 인시(寅時)11)였다.    미수 허목은 생전에  많은 저술(著述)을 남겼다. 선생이 돌아가신 후 숙종은 승지를 보내 치제(致祭)하게 하였으며, 시독관(侍讀官) 이봉징(李鳳徵)과 승지(承旨) 권환(權瑍)의 건의에 따라 ‘허목(許穆)의 문자를 간인(刊印)토록 하라’는 명을 내린다.  주(註)1) 최규서(崔奎瑞) : 1650년(효종 1)~1735년(영조 11) 본관은 해주(海州). 시호는 충정(忠貞). 호는 간재(艮齋)·소릉(少陵)·파릉(巴陵). 광주(廣州) 출신. 삼당시인으로 꼽히는 최경창(崔慶昌)의 현손이며, 최집(崔潗)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최진해(崔振海)이고, 아버지는 현감 최석영(崔碩英)이다. 2) 창선방(彰善坊) : 조선시대 초기부터 있던 한성부 동부 7방 중의 하나로서, 현재의 행정구역으로는 원남동・인의동・연지동・효제동・종로5・6가 각 일부에 해당된다.3) 정거(停擧) : 조선시대 유생에게 과거 응시자격을 일시적으로 박탈하던 제도. 4) 사가독서(賜暇讀書) : 조선시대에 국가의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고 문운(文運)을 진작시키기 위해서 젊은 문신들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한 제도.5) 박람강기(博覽强記) : 여러 가지 책을 널리 많이 읽고 기억을 잘함. 6) 이달(利達) : 이익(利益)과 영달(榮達)7) 내직(內職) : 서울에 있는 각 관아의 관직 및 수원 · 광주 · 개성 · 강화의 유수(留守). 경관직(京官職).8) 연원(淵源) : 사물이나 일 따위의 근원(根源).9) 경신대출척 : 1680년(숙종 6) 남인(南人) 일파가 정치적으로 서인에 의해 대거 축출된 사건.        10) 삭출(削黜) : 벼슬을 빼앗고 내쫓음.11) 인시(寅時) : 이십사시(二十四時)의 다섯째 시. 오전 세 시 반부터 오전 네 시 반까지이다.            <연천문인협회 회장>  <연천군 향토문화재 위원>   최병수(崔炳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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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24
  • 포천시, ‘2019 한탄강 지질공원 국제 학술세미나’ 개최
      한탄강지질공원센터 전경 ⓒ뉴스매거진21   포천시가 12월14일 한탄강지질공원센터에서 ‘2019 한탄강 지질공원 국제학술세미나’를 개최한다. 이번 국제학술세미나는 지난 2015년 한탄강 국가지질공원 인증 이후 포천에서 다섯 번째로 열리는 국제 지질 학술행사다.   지질공원의 선진지로 불리는 일본 토야-우스 세계지질공원, 이즈 반도 세계지질공원, 시마바라 세계지질공원 관계자들이 참석한다. 세미나 주제는 화산지형 지질공원의 가치와 체험교육 프로그램 개발이며, 양국 지질공원 간 교육프로그램 교류 및 확장을 위해 마련됐다.    비둘기낭폭포 ⓒ뉴스매거진21   포천시는 우리나라 지질공원 체험교육 현황, 체험학습 프로그램 운영에 대해 소개할 예정이며, 일본은 화산지형의 대표 지질공원인 토야-우스의 체험학습 사례와 발전 방안에 대해 발표한다. 특히 토야-우스 지질공원위원회 위원장 겸 호쿠쇼대학 교수인 요코하마 히카루 박사는 사례발표와 함께 ‘화산지형 체험교육’을 직접 시연·진행한다.                     포천시는 이번 세미나를 통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인증에 대비하고 실질적인 국제교류의 폭을 넓힌다는 생각이다.   화적연 ⓒ뉴스매거진21   한편 한탄강지질공원은 지난 2018년 11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인증신청서를 제출했다. 올해 전문가 서류심사와 현장평가를 받았으며 9월에 개최된 아시아-태평양 지질공원 총회에서 심의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했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인증 여부는 내년 4월 최종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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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15
  • [속보]연천 민통선에 숨겨진 대규모 고인돌 집단지 발견
      연천군 중면 민통선 내 고인돌 집단지에서 발견된 청동기 시대 '남방식 고인돌'인 무지석 지석묘. ⓒ뉴스매거진21       [뉴스매거진21-중앙일보 공동취재]    경기도 연천군 중면 민통선 지역에서 원형이 고스란히 보존된 2500∼2700년 전 이상 된 청동기 시대 무덤인 고인돌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특히 민간인의 출입이 금지된 이곳에서는 완벽하게 보존된 남방식 고인돌인 ‘무지석 지석묘(無支石 支石墓: 돌기둥이 없고 바닥에 작은 돌을 깐 고인돌)’가 국내 처음으로 잇따라 확인됐다. 이와 함께 고인돌보다 드물게 발견되는 거대한 자연석으로 만든 ‘선돌’과 곡식을 가는 데 사용한 현무암 ‘연석’, 돌을 가공해 만든 ‘석검’ 등 청동기 시대 유물도 함께 나와 고고학계의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2일 오후 연천군 중면 마거리 민통선 내 진명산 까마봉 정상 부근인 해발 266m 산비탈에는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무지석 지석묘 1개가 있었다. 가로 3m, 세로 2m, 두께 70㎝∼1m 크기다. 운모편마암으로 된 이 고인돌은 같은 재질의 커다란 바위 위에 잔돌을 깔고 놓여 있다. 주변엔 수풀이 우거진 상태였다. 이곳은 휴전선과 불과 5㎞ 거리다. 이곳과 500m 거리에는 7개의 무지석 지석묘가 일렬로 늘어선 채 반쯤 땅에 묻혀 있는 ‘열석’ 방식으로 조성된 고인돌이 보였다.  경기도 연천군 중면 마거리 민통선 내 고인돌 집단지에서 발견된 청동기 시대 '무지석 지석묘ⓒ뉴스매거진21 이병주 국사편찬위원회 경기연천군사료조사위원이 소개하고 있다. ⓒ뉴스매거진21    이병주 국사편찬위원회 경기연천군사료조사위원이 소개하고 있다. ⓒ뉴스매거진21        경기도 연천군 중면 마거리 민통선 내 고인돌 발견 지역 ⓒ뉴스매거진21    원형 보존된 남방식 고인돌인 ‘무지석 지석묘’ 잇따라 발견    현장을 안내한 이병주 국사편찬위원회 경기연천군사료조사위원은 “국내에서 발견된 무지석 지석묘 가운데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것 중 하나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 정도 보존상태라면 고인돌 아래에 석검·석촉 등 청동기시대 부장품이 그대로 묻혀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형태로 볼 때 2500여 년 전인 기원전 4∼5세기 청동기시대 족장의 무덤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열석 고인돌은 보기 드문 형태의 고인돌 집단지의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연천군 중면 민통선 내 고인돌 집단지에서 발견된 청동기 시대 '북방식 고인돌'. 받침돌이 무너져 상석이 비스듬히 놓여 있다. ⓒ뉴스매거진21      고인돌에 약 한뼘 간격으로 성혈이 5개가 이어져있다. ⓒ뉴스매거진21      고인돌 주변 집터용 주춧돌로 추정된다. ⓒ뉴스매거진21     곳곳에 성혈의 흔적이 있는 고인돌 ⓒ뉴스매거진21       이곳에서 300여m 거리의 콩밭 옆에도 비슷한 크기의 무지석 지석묘가 있었다. 지석묘 상석 바깥쪽에는 직경 3∼4㎝, 깊이 2∼5㎝ 크기의 구멍인 ‘성혈’ 5개가 나란히 파여 있었다. 이 고인돌 옆에는 자연석으로 된 어른 키 높이 정도인 가로 1m, 세로 2m 크기의 선돌이 세워져 있었다.   경기도 연천군 중면 마거리 민통선 내 고인돌 집단지에서 발견된 청동기 시대 '선돌'. ⓒ뉴스매거진21   “별자리 의미로 뚫어 놓은 ‘성혈’도 상석에 존재”     이병주 위원은 “고인돌 상석에 성혈이 뚜렷하게 남아 있는 것은 드문 일”이라며 “성혈은 별자리를 의미하거나 주술적 의미로 뚫어 놓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고인돌 옆 운무편마암 절벽에서는 7개의 구멍을 일렬로 뚫어 놓은 성혈도 발견됐다”며 “이는 북두칠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연천군 중면 마거리 민통선 내 고인돌 집단지 옆 암석에 파여진 7개의 '성혈'. 북두칠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병주    이병주 위원은 “선돌이 발견된 점을 볼 때 아늑한 분지 지형을 이룬 이곳에 청동기 시대에 마을이 형성돼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며 “특히 이 지역에서는 청동기 시대에 곡식을 돌로 가는 데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현무암으로 만든 25㎝ 길이 ‘연석’과 사냥할 때 사용했던 10㎝ 길이 ‘석검’도 발견된 점으로 볼 때 청동기 시대 주거지임이 분명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곳에선 이와 함께 구석기 시대의 주먹도끼도 발견돼 학술적 조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연천군 중면 민통선 내 고인돌 집단지에서 발견된 청동기 시대 '북방식 고인돌'. 받침돌이 무너져 상석이 비스듬히 놓여 있다. ⓒ뉴스매거진21    연천군 중면 민통선 내 고인돌 집단지에서 발견된 청동기 시대 '북방식 고인돌'. 받침돌이 무너져 상석이 비스듬히 놓여 있다. ⓒ뉴스매거진21      특히 선돌 100m 지점에는 받침돌이 양쪽에 있는 북방식 지석묘도 발견됐다. 하지만 이 고인돌은 받침돌이 쓰러진 상태로 상석이 비스듬히 받침돌 위에 놓여 있었다. 500여m 이내 콩밭 주변에도 땅에 묻힌 무지석 지석묘 5개가 보였다. 콩밭 경계 곳곳에도 밭을 개간하며 들어낸 것으로 보이는 무지석 지석묘 상석 6개가 방치돼 있었다.     마을 상징하는 ‘선돌’과 곡식 가는 청동기 유물 ‘연석’도 나와     이곳에서 1㎞ 거리인 연천군 중면 적거리 민통선 내에서는 지난 2005년 7월 국내 처음으로 원형이 완벽하게 보존된 ‘무지석 지석묘’가 최무장 전 건국대박물관장에 의해 발견됐다. (중앙일보 2005년 7월 23일자 10면)        임진강이 흐르는 방향에 따라 동서로 놓인 이 상석은 가로 2.7m, 세로 2m, 두께 25~60㎝ 크기로 바닥과 주변(길이 5.3m, 폭 2.2m)에 돌을 깨서 만든 길이 10~20㎝의 받침돌이 장방형으로 가지런히 깔려 있다.      매끈하게 다듬은 화강편마암으로 이뤄진 상석 윗면에는 동그랗게 구멍을 파서 북두칠성 모양으로 배치한 성혈 7개가 뚜렷하게 남아있다. 당시 주변 300여 m 지점 콩밭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무지석 지석묘 2개를 발견했다. 이 지석묘 상석에선 성혈이 각각 23개와 2개가 패어 있다. 최무장 전 관장은 “상석에 북두칠성을 뜻하는 일곱 성혈을 새긴 것은 드문 일로 학술 가치가 매우 크다”고 설명했다. 연천군 중면 민통선 내에서 지난 2005년 7월 발견된 별자리를 의미하는 ‘성혈’이 파여진 ‘무지석 지석묘’. 최무장 전 건국대박물관장이 소개하고 있다. ⓒ전익진       현장을 확인한 이석우 연천임진강시민네트워크 공동대표는 “연천 민통선 지역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지만, 역사적인 선사시대 유물인 고인돌 100여 개가 집단으로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남방식 고인돌인 무지석 지석묘의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는 가운데 북방식 고인돌까지 함께 발견된 점은 학술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설명했다. 연천임진강시민네트워크는 연천 민통선 지역 고인돌에 대한 체계적인 지표조사가 실시되고, 문화재 및 고인돌 마을로 지정해 보존 및 관리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경기도 연천군 중면 마거리 민통선 내 고인돌 집단지에서 발견된 청동기 시대 '연석'. ⓒ뉴스매거진21    경기도 연천군 중면 마거리 민통선 내 고인돌 집단지에서 발견된 청동기 시대 '석검'. ⓒ뉴스매거진21    경기도 연천군 중면 마거리 민통선 내 고인돌 집단지에서 발견된 구석기 시대 '주먹도끼'. ⓒ뉴스매거진21    경기도 연천군 중면 마거리 민통선 내 고인돌 집단지에서 발견된 구석기 시대 '주먹도끼'. ⓒ뉴스매거진21    “북한 ‘별자리 고인돌’과 비슷한 ‘성혈’ 발견된 것 의미”   평양 지역 고인돌 연계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 동시추진 가치있어      이와 관련, 임효재(전 서울대박물관장) 동아시아고고학연구회장은 “연천 민통선 지역에서 이번에 발견된 무지석 지석묘와 북방식 지석묘 등은 북한 평양 인근 지역을 방문해 답사해본 고인돌과 매우 유사하다”며 “남방식·북방식 고인돌을 동시에 연구하고 고인돌의 변천사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고고학적 자원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임 회장은 또 “연천 민통선 고인돌과 북한의 고인돌에서 별자리를 상징해 뚫어 놓은 구멍인 ‘성혈’이 동시에 발견되는 점은 의미가 크다”며 “우리나라는 청동기 시대부터 별자리를 관찰했다는 천문학적인 우수성을 보여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에서는 이런 고인돌을 ‘별자리 고인돌’이라 이름 붙여 독보적인 선사시대의 천문학 유물이라고 소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 회장은 “이에 따라 원형이 잘 보전되고 다수가 분포해 있는 연천 민통선 지역 고인돌과 북한 평양 지역 고인돌을 연계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동시에 추진해볼 가치가 있어 보인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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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11
  •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 특별전시 ‘온돌 : 회암사의 겨울나기’개최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양주시장 이성호)은 오는 11월 8일부터 내년도 2월 9일까지 ‘온돌 : 회암사의 겨울나기’ 특별전시를 개최한다. 회암사지 ⓒ양주시   ‘온돌’은 국가무형문화재 제135호로, 옛날부터 한반도에 사는 우리 민족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우리 고유의 난방시설이다. 최대 3천여 명이 머물렀다고 전해질 만큼 그 규모와 사세가 대단했던 양주 회암사의 광활한 3만여㎡에 달하는 유적지에는 예불공간과 주거공간 등 82동의 많은 건물지가 자리하고 있다.   특히, 총 38개의 건물터에서 발견된 온돌시설은 현재까지 국내 단일 유적 중 최대 규모의 유구 군으로 옛 회암사에서 머물렀던 많은 사람들의 겨울나는 생활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 100여건의 전시물과 정보 패널을 통해 사적 제128호 양주 회암사지 곳곳에서 대량으로 출토된 온돌유구의 현황과 가치를 전달한다.    온돌-회암사의 겨울나기 포스터 ⓒ양주시   주목할 만한 부분은 전시장에 재현한 국내 온돌 건물지 중 가장 큰 규모로 출토된 서승당지의 일부이다. 서승당지는 승려들의 참선공간이자 행사 시 외부인들의 쉼터로 활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로, 남북 길이가 약 32.6m에 달하는 대형 건물 안에 ㅌ자 형태의 탁상구조 온돌이 출토됐다.   회암사지박물관 관계자는 “이번 전시가 회암사지 온돌의 현황과 가치를 알아보며 조상들의 겨울나는 지혜를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길 기대한다”며 “추운 겨울 따듯한 온기를 직접 느낄 수 있는 이번 전시에 시민들의 많은 관심과 관람을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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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11
  • ‘1028 윤금이를 기억합니다’ 추모행사 열려
      윤금이 추모행사-꽃 퍼포먼스 ⓒ뉴스매거진21   진행. 김대용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 공동대표 ⓒ뉴스매거진21   1028 윤금이를 기억합니다-전경 ⓒ뉴스매거진21   ‘1028 윤금이를 기억합니다’준비모임은 지난 10월 27일 오후3시 동두천 보산동 한미우호의광장 옆에서 ‘1029 윤금이를 기억합니다’ 추모행사를 개최했다. 김대용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 공동대표와 김현호 성공회 사제·동두천나눔의집 원장·턱거리사람들협동조합 이사장이 제안하여 본 행사를 갖게 되었다. 뜻을 같이 하는 50여명이 참여했고, ‘1028 윤금이를 기억합니다’ 낭독, 레인보우99 추모공연, 꽃 퍼포먼스 그리고 참가자들 생각과 다짐을 공유하는 순서로 1시간에 걸쳐 진행했다.    낭독. (좌)이영란 턱거리마을 편집장 ⓒ뉴스매거진21   낭독. (좌)이혜진 미술작가 (우)김현호 성공회 사제 ⓒ뉴스매거진21   윤금이 추모공연-레인보우99 ⓒ뉴스매거진21    준비모임 취지문에서 다음과 같이 발췌했다.   "1992년 10월 28일 윤금이 죽은지 27번째 기일을 맞아 그 죽음을 애도하고 위령하기 위해 사건 현장에 모였습니다... 27년 전이나 27년이 지난 지금이나 불평등한 한미관계뿐 아니라 우리 사회 내부의 불평등은 여전합니다... 이 곳 동두천엔 경제적으로 열악한 분들도 많고 세계 각지에서 온 이주노동자, 난민 등 사회적 소수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안녕합니까? 가난이 강요한 평범 속에서 다치거나 죽어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어쩌면 그들은 우리 곁에 살아있는 윤금이일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때입니다”   [전문 인용] ‘10월 28일 윤금이를 기억하며’ 오늘 우리는 한 여인을 기억하며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27년전 이 땅 이 장소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기억합니다. 한 여인이 쓰러졌고 한 남성이 잡혔습니다. 그 여인의 이름은 윤금이이고 그 남성의 이름은 케네스 마클입니다. 한 여인의 억울한 죽음 앞에 이웃한 시민들은 움직였습니다. 전에 갖지 못했던 용기와 분노였습니다. 윤금이의 죽음과 아픔을 애도했습니다. 그리고 가해자들을 향해 목청이 터져라 외쳤습니다. 꽃상여 만들어 동네 한 바퀴 돌았습니다. 한국정부를 향해, 미국정부를 향해 더 이상 이래서는 안 된다고 소리를 높혔습니다.   그리고 27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무엇이 변했는지 되돌아봅니다. 집터는 사라졌고 수많은 클럽의 자리는 공방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당시 이 자리를 지켰던 청년들은 어떻게 변했습니까? 당시 마음 애타하며 함께 울었던 이웃들은 어떻게 변했습니까?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였던 미군 케네스 마클은 어떻게 변했으며 그의 동료들과 그들을 파병한 나라는 어떻게 변했습니까?   변한 것들 가운데 분명한 것은 우리의 기억에서 윤금이가 멀어졌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우리는 새로운 돈벌이를 찾고 있고, 빈 집과 빈 공간을 채울 누군가를 찾고 있을 따름입니다. 여전히 우리는 일상의 바쁨으로 누군가 대신하겠지 궁시렁거리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때 그 사람들처럼 오늘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27년전 윤금이가 왜 이 곳에 왔는지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 있습니까? 그가 어디에서 태어났고 어릴 적 동무들은 누구였는지를 기억하고 있는 이 있습니까? 그의 꿈은 무엇이었고 돈을 벌면 무엇을 하고자 했는지 알고 있는 이 누구입니까? 누군가 이미 조사해 놓은 자료를 찾아 볼 여유조차 없는 우리의 모습을 이 시간 반성합니다.   우리는 10월 28일 윤금이를 기억합니다.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10월 28일 죽은 윤금이는 한 명이 아니었음을... 우리의 몸이 약해 외국군대가 주둔할 때부터 수많은 윤금이들이 있었다는 것을... 과장되고 헛된 감언이설로 윤금이들을 이 곳으로 이끌었던 존재들이 있었다는 것을...   오늘 이 시간에 다짐해 봅니다. 우리가 무엇을 향해 변화해 가야 하는지를 잊지 않겠다고... 또 다른 윤금이들을 만들지 않는 날을 향해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 나가겠다는 것을... 그 여정은 물론 힘들겠지만 그 길 위에 서는 것이야말로 윤금이를 위로하는 일이고 제2의, 제3의 윤금이를 만들지 않는 것이라고...   이 곳에 모인 우리는 종교도 다르고 이념도 다르고 출신배경도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된 마음으로 모였습니다. 그것은 윤금이를 기억하고 우리의 삶을 통해 윤금이의 꿈을 실현시켜 나가는 것이겠지요. 우리들의 작은 몸짓으로 비오니, 윤금이님 그리고 또 다른 윤금이님들 고이 가소서.   10월 27일 윤금이를 기억하며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함께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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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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